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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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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이 <상속> 이후 5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소설집. 2005년 여름부터 2007년 봄 사이에 씌어진 여섯 단편이 수록되었다. 매편마다 개성과 색깔이 제각각 뚜렷하지만, 비루하고 초라한 삶들을 조용하게 연민하며 공감하는 시선은 한결같다.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서른다섯번째 생일날,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전작이었던 장편 <비밀과 거짓말>이나 소설집 <상속>의 표제작에서 은희경이 바라보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번 소설집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포함한 가족관계 속에서 삶과 정체를 탐구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현대의 고독하고도 분열적인 인물을 다룬다. 그 소소한 일상의 국면에서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서사는 매우 섬세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긴장과 착종이다. 서사를 따라 읽다보면 소설 속에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현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하나의 허구(소설) 안에 허구적인 설정이 겹겹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바깥의 허구(소설 속의 현실)보다 더 허구적인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해설에서 이렇게 평했다. "초기 은희경 소설들은 면도칼 같아서 읽는 중에 여러 번 당신을 긋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은 기꺼이 즐길 만한 통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소설은 칼이 아닌 척하는 칼이어서 당신은 베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로 깊이 베이게 될 것이다." 의심을 찬양함 : 은희경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였)다. 내 머릿속에 그려졌던 은희경'표' 이미지는 화사한 꽃무니의 블라우스, 발랄하고 세련된 푸른색 터틀넥, 스포티한 토트백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나는 그 브랜드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지금 내 머릿속의 은희경 브랜드는 검은색 슈트에 가깝다. 색은 옅어졌고, 장식은 줄었다. 흑백의 이미지다. 언뜻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흑백이야말로 궁극의 지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흑(黑) 속의 깊이, 백(白) 속의 빛깔을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비의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흑백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흑백의 피가 더 섬뜩해 보이고, 흑백의 풍경에서 더 무궁무진한 색감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아마도 나는 예전의 컬렉션보다 새로운 은희경 브랜드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곳은 조금 불편할지 모르지만, 불편하기 대문에 우리의 몸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고, 불편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중혁 (소설가) : 초기 은희경 소설들은 면도칼 같아서 읽는 중에 여러 번 당신을 긋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은 기꺼이 즐길 만한 통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소설은 칼이 아닌 척하는 칼이어서 당신은 베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로 깊이 베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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