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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성대.부경대역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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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20권. 2018년 올해로 시력 서른한해째를 맞은 박철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시인은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외 1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도시 주변부의 풍경과 삶을 애정있는 시선으로 그려내며 독자와 평단의 신뢰를 쌓아왔다.
<작은 산>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지난 30년의 작품활동을 가다듬고 되짚어보고 있다는 데 한층 의미를 더한다. "내 나름의 시 이론서를 하나 쓰고 싶었으니, 이 책으로 대신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4부 65편으로 구성된 시편들을 통해 완숙한 서정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시인이 걸어온 삶의 여정은 이번 시집 곳곳에 묻어나 있다. 어릴 적 고향 김포의 풍경에서 시작해 서울 변두리를 거쳐, 저기 먼 호주 같은 곳을 지나 다시 고향 김포로 돌아오는 동안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의 자리에서 부끄러움과 싸워온" 고투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박철의 시가 변화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사회현실의 세목들이 달라졌기 때문이고, 박철의 시가 한결같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생활과 비참과 세계의 부조리가 여전히 공고히 버티고 있는 까닭이다. 제1부 : 오랜 우물처럼 길어도 길어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 흘러나온다. 눈으로 읽지 말고 귀로 들어야 맛이 나는 시집이다. 박철이 우리 시대 사람살이와 가장 닮은 시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묵은 별빛처럼 와닿는다. 그의 시는 한결같이 사람과 사랑을 향해 있어 애절하고 외로우면서도 의롭게 다가온다. 김포에서 시만 쓰면서 살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오래된 사진첩처럼 바래가는, 그래서 더 미뤄둘 수 없는 묵힌 사랑 노래를 부른다. 그 속에는 함께 나이 들며 지극하기만 한 가족과 이웃과 친구가 있고, 주저앉아 목멘 울음을 울 때마다 다독여주는 자연이 있다. 그런 이유로 시인은 시에는 엄격하지 않았으되 자신에게만은 엄격했으리라. 시인은 “저 혼자 옹기종기란 말은/얼마나 비상식적으로 아름다운가 특별한가”(「저 혼자 옹기종기」)라고 묻고 있는데, 나는 이 말이 너무나 좋다. 시편들마다 언제나 둘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무심한 척 저 혼자 있는 듯해도 시가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둘이 참 어울리게도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다. 그 모습이 편안하면서도 아련하고 마음 퍼덕이게 한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이라는 말에는/누구나가 살고 있”고 “그건 사랑이라는 말에 살고 있는/사람의 모습”(「끝 간 데」)이리라.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동아일보 2018년 5월 5일자 '책의 향기/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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