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프랑스 포켓판 베스트셀러.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본격 스릴러물이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섰지만 아직 탁월한 동물적 감각을 잃지 않은 베테랑 경관, 자기도 모르게 사건의 한복판에 끌려들어 왔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수사력을 보여 주는 매력적인 천재 영문학 교수,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세출의 연쇄 살인범.
천재적이다 못해 두렵기까지 한 살인자를 다루는 이야기는 TV 시리즈나 영화로 이미 단련된 영상 세대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스릴러물들의 특징이 가벼움과 박진감, 시각적인 자극이라면 로맹 사르두의 작품에서는 묵직함과 장중함이 느껴진다
물론 흥행 대작들의 메카 할리우드에서 경력을 쌓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필요한 곳에는 속도감 있는 장면 구성을 보여 주지만 그것이 가볍지 않고, 세세하게 배치된 디테일들이 아날로그적으로 서서히 작동하면서 압도적이고 장중한 공포가 느껴진다.
작품의 이러한 독특한 분위기는 사르두 특유의 탄탄한 문장력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등장인물들 역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연쇄 살인범은 기존의 스릴러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타입의 살인자이다. 퍼펙트 킬러는 시리얼 킬러에 비해 제어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의 돌출 행위에 대한 인식도 명확할 뿐더러 절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 완벽한 살인자이다.
강력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과 탄탄한 문장력 외에 로맹 사르두의 이번 소설만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액션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묘사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건의 퍼즐을 맞추어 가면서 느끼는 재미뿐만 아니라 글 읽는 재미, 행간을 읽는 재미를 쏠쏠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소위 <프랑스적> 소설 읽기의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