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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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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편혜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실 그런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그렇다는 걸" 말하고 있다.
전작 <저녁의 구애>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 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 킬로미터,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소설은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 그리고 다시 열린 2부와 3부에서 현재 이 숲의 관리사무실에 붙박여 주인 모를 스도쿠 책을 뒤적이거나 바람 소리와 짐승 소리 외엔 적막한 숲으로 나 있는 창틀을 배회하거나 간단한 일지를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박인수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엉키면서 마을에 짙게 드리운 불안과 폭력의 실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1부 : 작은 범죄가 거대한 심연을 감추고, 결정적인 것은 끝까지 말해지지 않는다. […] 모호한 소리에 몸체를 찾아주려 했으나 어느 샌가 입을 벌린 대지의 틈,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는 주체의 모험담. 이 틈과 폐허를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보전하기 위해서 자기 지시적 알레고리와 스트레칭 서스펜스가 동원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박인수가 모호한 소리를 현실적인 몸체로 환원하려들지 않는 한에서만 주체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과 동시에, 박인수가 주체의 자리를 고수하는 한에서만 소리를 쫓는 모험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서쪽 숲에 갔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절망적인 메아리와 부엉이 울음소리는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 숲의 관리인으로 일하다 사라진 형이 있다. 동생이 그 형의 행방을 찾아 숲으로 간다. 그런데 변호사인 동생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죽고 만다. 형의 후임 관리인도 그 형제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숲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숲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숲은 어둡고 깊다. 검은 벽 같기도 하고 깊은 미로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들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는 숲이 있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온갖 음모와 술수의 일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마치 숲 속에서 대규모로 불법 벌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나,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살인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망상이자 루머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력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하나의 진실이 있으면 어디에든 또 다른 진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 소설은 탐정물이나 추리물이 아니다. 스릴러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사실과 가능성, 현실과 환상, 불법과 적법, 오해와 이해, 본능과 의지 사이를 오가면서 펼쳐지는 판타지에 더 가깝다. 이 소설에서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고 그것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악무한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심연이나 숨기고픈 무의식의 심연, 상처와 불안으로 점철된 우리 인생에서 숲은 어디에서도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누구나 그 숲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숲’은 존재가 아니라 사건이다. 배경이 아니라 인물이다. 그런 숲에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런 숲을 스스로 찾아 가는 행위가 바로 인생이자 인간의 조건임을 이 소설은 불온하게 전해 준다. 언제나 입구가 곧 출구이기도 하니까.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2년 07월 09일 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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