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의 젊은 나이로 이국 땅 차디찬 감옥 속에서 생을 마감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유고시집.
한국문학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194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에게 윤동주 같은 시인이 있었다는 건 분명 축복받을 일이다. 그는 진실로 인간과 자연, 우주를 사랑한 시인이었으며,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진정한 민족애로 승화시킨 휴머니스트였다. 비록 우리에게 남겨진 작품은 시집 1권이 전부이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했던 그 순백한 영혼과 기품있는 순수성만큼은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김애리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책에 미친 청춘」 저자) : 시詩라는 가장 아름다운 친구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 : 부끄럼과 자기 성찰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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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저자) -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아트북스 刊)
최근작 :<정지용·이상·백석·윤동주 소장용 세트 - 전4권> ,<일본 교과서의 윤동주와 이바라기 노리코 세트 - 전2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총 468종 (모두보기) 소개 :1917년 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8~1930년(12세~14세)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1931년(15세) 3월 15일, 명동소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16세)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쓰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20세)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 11월호에 동시 「병아리」, 12월호에 「빗자루」를 윤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22세)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1939년(23세)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을 발표했다. 1941년(25세)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3년(27세)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되었다. 1944년(28세)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45년(29세) 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