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아사히나 아스카의 첫 번째 소설. 제49회 군조 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학력 중심 사회에 배신당한 현대인의 근원적인 좌절과 현대 여성이 갖는 딜레마를 그려낸 작품이다. 스물아홉 살 리리코를 통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동시대 여성이 갖는 고민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리리코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며 공부에만 매달린 우등생이다. 그녀는 명문대에 합격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게 되지만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달려온 결과 사소한 지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멸한다. 결국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택한다.
실패의 상처는 그녀가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고, 남편 유스케와 시어머니는 아이를 갖기를 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리리코는 어릴 적 동경했던, 우연히 집안 형편이 나빠져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한 우등생 구마자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현재, 해즈빈, 한물간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최근작 :<학교라는 세계> ,<날개의 날개> ,<여자의 행복> … 총 19종 (모두보기) 소개 :1976년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게이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2000년에 논픽션 《빛 가리키는 고향에》로 등단한 뒤, 2006년에 발표한 첫 소설 《우울한 해즈빈》으로 제49회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인간 타워》《츠바사의 날개》《나나미의 바다》 등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들로 주목받았으며, 《학교라는 세계》는 중학교 입시 국어 문제로 여러 번 출제되어 화제가 되었다.
최근작 : … 총 97종 (모두보기) 소개 :성신여자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롯데 캐논,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번역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도련님》,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소노 아야코의 《알아주든 말든》, 《나다운 일상을 산다》,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이사카 고타로의 《그래스호퍼》,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가솔린 생활》, 《사막》, 《오듀본의 기도》,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산문집 《그것도 괜찮겠네》, 시게마츠 기요시의 《허수아비의... 성신여자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롯데 캐논,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번역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도련님》,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소노 아야코의 《알아주든 말든》, 《나다운 일상을 산다》,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이사카 고타로의 《그래스호퍼》,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가솔린 생활》, 《사막》, 《오듀본의 기도》,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산문집 《그것도 괜찮겠네》, 시게마츠 기요시의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 《오디세이 왜건, 인생을 달리다》, 《소년, 세상을 만나다》, 《나이프》, 《안녕, 기요시코》,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 《워터》, 《파크 라이프》, 츠지무라 미즈키의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아라키 겐지의 《촌마게 푸딩》, 하야미네 가오루의 《괴짜탐정의 사건노트》(12권), 후지타 요시나가의 《텐텐》 등 다수가 있다.
여성적 필치와 섬세한 감성으로 빚어낸 이 시대 여성들을 위한 성장 소설
무서운 신인이 등장했다. 아사히나 아스카가 그 주인공으로, 첫 번째 소설 <우울한 해즈빈>으로 고단샤가 주최하고 무라카미 류(제19회<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무라카미 하루키(제29회<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굴한 제49회 군조 신인문학상을 단번에 거머쥐었다. 30대에 접어든 저자는 <우울한 해즈빈>에서 스물아홉 살 리리코를 통해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동시대 여성이 갖는 고민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울한 해즈빈>은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인물 묘사와 섬세한 구성으로, 학력 중심 사회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좌절과 현대 여성이 갖는 딜레마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한 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스물아홉 살 리리코의 일상을 마치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섬세하면서도 집요하게 그린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용안정센터에 드나들고, 웃는 얼굴로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인스턴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는 일상의 단면 속에서 독자는 안으로 곪아가는 현대인의 상처와 좌절을 본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리리코, 공부 잘하는 딸에게 큰 기대를 품던 리리코의 부모님, 리리코의 상처는 전혀 모른 채 순수하게 그녀를 좋아하는 남편 유스케, 리리코가 주부이자 엄마로만 살아온 자신과는 달리 일을 갖기를 원하는 시어머니 모두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다. 학력 중심 사회에 배신당하고 방황하는 리리코는 물리학 박사가 환경미화원을 지원하고, 자연계 학생들은 의대로, 인문계 학생들은 각종 고시로 몰리는 한국 사회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아 헤매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경기 불황으로 사회가 더욱 불안정해지면서 의미가 불분명한 학력과 스펙의 과열 경쟁은 점점 당연시 되고 있다. <우울한 해즈빈>은 ‘사회 문제’ 또는 ‘현상’으로 치부되는 이러한 현대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개인이 실제로 겪는 고통과 좌절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끝없이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
20, 30대 여성의 불안과 소외의식, 그리고 꿈틀거리는 자아를 발견한다
리리코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며 공부에만 매달린 결과 우등생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명문대에 합격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게 되지만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달려온 결과 사소한 지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멸한다. 결국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그녀는 오기로 버티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택한다. 실패의 상처는 그녀가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고, 남편 유스케와 시어머니는 아이를 갖기를 원한다. 뒤로 돌아가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고군분투하던 리리코는 어느 날 우연히 어릴 적 동경하던 우등생 구마자와를 만나게 된다. 집안 형편이 나빠져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한 그를 만남으로써 그녀는 직면할 수 없었던 자신의 현재, 해즈빈, 한물간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삶의 방식만 보여주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경력과 학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인생은 엄마도 모르는 세계잖아.
자기가 경험해본 적도 없는 일을 다른 사람한테 강요하고, 혼자 만족하고,
내가 그런 것에 완전히 배신당한 줄도 모르잖아!” (p.133)
저자는 리리코를 통해 학력 중심 사회에서 자란 개인은 직장생활로 대변되는 전혀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상처받고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항상 우등생으로 잘해오기만 한 그녀는 뻣뻣한 대나무처럼 사회에 맞선다. 학창시절 그 누구도 그녀에게 대인관계와 유연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이야기의 절정에서 리리코가 엄마에게 터트리는 울분은 그렇게 교육받고 자란 그녀가 느낄 수밖에 없는 좌절감을 잘 보여준다. 리리코의 이야기는 학력, 자격증, 영어 점수가 행복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학력 맹신주의의 달콤한 속삭임에 속아온 한국 사회의 20, 30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리리코의 상처와 좌절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모습이 오늘도 무한 경쟁 속에서 상처를 안고 달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그룹이야말로 마지막 피난처라 여기고 있었다.
큰맘 먹고 차라리 저 그룹에 끼어 아이 키우기라는 격류에 휘말리는 것은 어떨까?
결혼, 출산이라는 단순한 행복을 공유하고
기저귀와 분유로 쌓은 성에 나를 가두어버리는 거다.” (p.114)
리리코는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된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결혼과 임신에 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현대 여성에게 ‘성공적인 삶’은 더 이상 ‘행복한 결혼과 가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성공의 필수 요소로 교육받은 현대 여성들에게 결혼과 임신은 앞으로의 인생을 건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자신을 좁은 시야에 가두고 커리어우먼을 인생 목표로 고집스럽게 달려온 리리코에게 결혼과 임신은 도피이자 삶의 목표 상실을 의미한다. 비록 결혼과 임신에 있어 선택의 기회는 많아졌지만 남편 유스케와 시어머니 처럼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이 ‘성공한 커리어우먼’과 ‘좋은 엄마’ 중 어느 한 곳에 속하기를 원한다. 획일적으로 주입된 ‘성공적인 삶’의 허상에 배신당하고 ‘좋은 엄마’가 되기를 거절한 리리코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의지로 ‘행복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결혼과 임신에 대한 고민은 모든 여성이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반드시 맞닥뜨리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현대 여성들의 딜레마를 정확히 포착했다는 점에서 여성 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언제나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결혼과 출산으로 미래의 목표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결국 의지할 것은 나 자신뿐이며, 일찍이 내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_저자 인터뷰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저자 아사히나 아스카의 인생행로가 주인공 리리코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명문대 졸업 후 삼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 주재원의 아내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첫 아이를 임신하였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 중에 <우울한 해즈빈>을 집필했다. <우울한 해즈빈>에는 “아직 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메일을 받거나 화려한 직장명들이 나열된 동창회 명부를 보면서 남겨진 기분도 맛보았다”고 말하는 저자 본인의 경험과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인공 리리코의 방황과 좌절이 더욱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아사히나 아스카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