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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지즈코(저자) | 이선이(역자) | 박종철출판사 | 199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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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 280쪽 | 210*148mm (A5) | 392g | ISBN : 978898502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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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일반화된 페미니즘'의 가능성"

한미 관계에 있어서 불평등한 SOFA 개정에 대해 대중적인 요구가 높아지고 많은 집회와 시위가 있었다. 집회에서 본 어떤 구호가 참 '인상적' 이었는데, 구호인 즉은 "SOFA 협정 개정하여 우리 처녀 지켜내자"라는 것이었다.

이 구호가 어떠신가? SOFA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에 붙는 구호가 무엇이든 간에, "민족적 이익을 수호함으로서 처녀의 '정조'를 지키자"는 논리에 대한 것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편, 좀 지난 일이지만, 공무원 시험의 군 가산점 문제로 사이버 공간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일부 게시판은 욕설로 도배되기도 했고, 폭력적인 메일이 오가는 사태까지도 벌어졌다. 일부 남성들의 주장은 "남녀 평등이 되면 여자도 병역의 의무를 부담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일들은 이 책에서 직접 다루고 있는 소재는 아니다. 이 책은 2차 대전 시기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페미니즘 (운동)에 던지는 곤란을 극복하기 위한 제안을 담은 책이다. 그러나, 이 여러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관련된 문제들이다. SOFA반대 구호의 뒷부분과 군 가산점 논쟁,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가 그렇다는 것.

그럼 왜?

여성의 문제를 내셔널리즘(국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하위에 위치시킴으로서, 실제로는 여성의 문제를 소거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민족의 이익은 여성의 '정조'라는 봉건적 관념을 위한 것으로 상징되고(SOFA 구호), 민족-국민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는 전쟁에서 '국가'(혹은 민족)을 방위하는 '의무'를 다할 때만 보장되는 것이며(군 가산점 논쟁), 황국신민(=국민)의 의무로 '성'(혹은 '정조')을 바쳐야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이 있기 전까지는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민족의 수치'로 인식되어 오히려 문제제기 자체가 한국에서 가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녀 평등이 되면 여자도 병역의 의무를 부담해야한다"라는 낯익은 구호는 사실은 70년대 미국 ERA(남녀 평등 수정헌법 조항)에 대해 반대하는 악질적인 캠페인의 구호와 한 글자도 틀리지 않는다.
(한편,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SOFA 구호에서 나타나는 쟁점이나 군 가산점의 논쟁에 있어서의 쟁점은 보다 복잡하다. 다만 이 글에서는 주제와 관련되는 한에서만 언급한다.)

저자의 주장은, 내셔널리즘의 품안에서는 사실상 페미니즘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내셔널리즘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국민'이 되기 위하여 '황국신민'의 의무, 즉 동아시아 침략에 헌신하자라고 자발적으로 주장했던 2차 대전 기간 일본의 여성운동가들의 오류를 반복할 것이다. (이화여대에서 제정하려 했던 '김활란상'의 주인공의 경우에도 그런 주장을 일본이 아닌 조선에서 했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다.)

저자는 이를 검토하면서 국민국가의 형성의 과정에서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럼 과연 페미니즘은 내셔널리즘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바는 아니지만 E.발리바르의 논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민족국가를 필요로 하고 또한 형성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있다. 즉, '도시국가'나 '제국'의 형태가 아니라 '민족국가'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서의 '인권선언'이 제기하는 '자유'는 부르조아에게는 자본의 소유자로서의 자유와 그들 상호간에 공동체를 의미하는 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것으로, 노동자 대중에게는 '진정한 인민의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해되었다는 것. 이후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이러한 쟁점을 가지는 것이었다. 전자는 '자유주의'로, 후자는 '사회주의'로 분기한다. 자유주의는 태생적으로, 사회주의는 후천적으로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인권선언'이라는 것은 사실은 '남자 homme'의 권리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당시에 자코뱅 당에 의한 (최초의) 페미니즘 탄압(테르마뉴), 러시아 혁명에서 콜론타이의 페미니즘적 문제제기의 억압의 역사 등등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자유-평등 명제'의 실현 문제는 자유주의-사회주의, 민족주의의 관계를 넘어 여성이라는 항을 도입하고 한 번 더 복잡해진다.

이 책의 저자는 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소 거칠게 정리하자면, 저자는 어느 나라의 페미니즘이든 내셔널리즘으로부터 벗어나고 국제적 연대를 실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탈-내셔널리즘은 침략국가인 일본에 당연한 것이지만, '침략당한'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도 마찬가지. '국민'으로 포섭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전쟁'은 그것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는 침략전쟁일 때 당연히 거부되어야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전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 결론은 기본적인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는 옮긴이 이선이 씨가 반론을 제기한다. 민족해방전쟁은 그들의 생존전략이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모든 전쟁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일본인 '위안부'와 한국인 '위안부'의 처지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낳는 부정적인 효과 때문에 거부되어야하는 것인지 등이다.

'인권선언'이라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문건이 젠더 편향적이라고 해서 거부될 수 있는 것인가. 이 '민주주의'를 쟁점으로 사활적으로 이루어지는 피착취자들(그것이 민족이든 계급이든)의 투쟁에 페미니즘의 입장은 어떠해야할 것인가라는 문제.

분명히 역사적인 자본주의의 주체화 양식인 민족형태 속에서는 성적 차이의 권리, 성별화된 권리를 사고할 수 없다. 이는 학교, 가족으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하여 여성을 '타자'로서 배제한다.

이 한계의 극복은 '인권선언'에서 제기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권'의 문제의식과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권'을 결합하는 '인권의 정치', 새로운 시민성을 구축하는 정치(시빌리떼civilite의 정치)로서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확장은 이미 제기되고 있는 에코-페미니즘 전략과 함께 '일반화된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권' 역시도 전화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

정리해보자. 이 책은 여성의 인권이 내셔널리즘에 의해 왜곡되고 결국에는 페미니즘도 내셔널리즘의 일종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고한다. 이는 최근 일본 우익들이 진행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단체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데도 필수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민족-국가의 시민의 권리로서 뭉뚱그려질 수 없는 성적 차이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이 글의 머리에서 예를 든 우리의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서 의미 있는 판단의 근거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하는 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으나 해답으로 결론 맺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제기한 문제를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작동시킬 것을 요구하는 책이라는 데 있다. - 박준형(200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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