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역대급 막내아들 001화

0000

제 1화



Prologue



올해 34세가 된 나는 가끔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검을 조금만 더 일찍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가문이 누나를 제국에 팔아 버리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으면 지금의 나라는 괴물이 존재할 수는 있었을까.

설령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스승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모질이, 멍청이, 저능아 같던 과거의 나를 변모시키고, 내가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던 내 스승님.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고 스승님은 내게 은인 그 이상의 존재였다.

하지만.

‘스승님이 그렇게 가실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잘해 드리는 건데.’

하다못해 이것마저 후회가 남는다.

어떤 학자가 인간은 항상 후회하면서 사는 동물이라고 하던데, 확실히 맞는 말이었나 보다.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잘못된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려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다.

천천히 숨을 토해 냈다.

후우-

하늘로 솟아오르는 하얀 입김.

그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평원은 본래라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체.

피.

온갖 생명체의 부산물이 쌓여 있는 들판은 아름답기는커녕 지옥 그 이상의 처절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벅저벅-

곳곳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용포 입은 시체의 등을 의자 삼아 앉아 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앳된 외모, 그리고 작은 키.

몸에 맞지 않게 큰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꼬마가 보인다.

아무리 봐도 소년병이 분명했다.

그 소년이 떨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보름달이 내비치는 달빛이 소년의 검을 비추고 있었고, 그 검을 쥔 소년의 손은 중풍이라도 걸린 것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조금,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저 상태로 저걸 휘두를 수나 있으려나.

“그래도 내가 애들은 가능하면 안 건드렸는데, 은혜를 이렇게 갚냐?”

실실 웃으며 말하자 소년병이 답한다.

“당신은 제 아버지를 죽였어요.”

“아…… 그래? 유감이네.”

소년병의 뒤로, 한 백여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비슷한 처지의 소년병들이 보인다.

숫자는 대충 이천? 삼천? 모르겠다.

시체로 둘러싸인 들판에서 살아남은 소년병들이라.

꽤 괜찮은 그림이다.

꼬마가 말했다.

“……괴물, 당신은 괴물이에요.”

무슨 말을 하나 했는데, 괴물이라니.

너무 많이 들어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어서 몸 구석구석에서 찌릿하고 통증이 올라온다.

뿐이랴. 몸은 노곤하고 찌뿌둥했으며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듯한 뇌는 이제 그만하자고, 이제 그만 죽자고 계속 신호를 보내온다.

그런데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봐.

“괴물이라…….”

피식-

“마스터를 전부 죽이고, 혼자서 툴칸 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무너뜨리고, 황제도 죽이고, 아예 씨를 말려 버린 내가 괴물이라니, 너, 내 손에 죽은 놈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냐?”

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긴, 나도 자세히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겠냐.

그래도 확실한 건.

“최소 수천만, 그 이상을 죽였는데 괴물? 야 꼬맹아, 그건 너무 당연한 소리잖아.”

웃으면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그냥 웃었다.

내가 웃어도 뭐라 하는 사람, 이제는 없잖아.

고개를 들었다.

석고상처럼 굳어 있던 소년병이 이제는 겁먹은 것처럼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꼬마가 쥐고 있던 검으로 향했다.

길이 약 1.2m의 양날검.

저거, 느낌상 소년병이 쓸 정도로 하찮은 무기는 아닌 것 같다.

양각되어 있는 무늬나 날이 제대로 서려 있는 걸 보니 꽤 고가의 검.

“꼬마야. 이름이 뭐냐?”

“……잭, 잭 스튜어트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묘한 우연이네. 내 이름도 잭인데.”

꼬마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란 걸까.

싱겁게도 반응이 없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내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고? 솔직히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스튜어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나는 몰라. 기억도 안 나고. 그래도 아버지 복수를 입에 담는 걸 보니 사이는 꽤 좋았나 봐?”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제게는 꼭 필요한 아버지였어요.”

나는 그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필요한 아버지라…….

정말이지, 조금은 부럽기까지 하다.

“죽여서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할 거다. 대신 너한테 기회를 줄게.”

“……네?”

“그거, 네가 쥐고 있는 그 검으로 날 찔러.”

소년이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펄떡 뛴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 모습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오른팔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리고 있었으며 앉아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 내 두 다리는 짐승에게 뜯어 먹힌 것처럼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난 상태였다.

기능을 잃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내 주변을 적시고 있던 핏물 중 약 50프로 이상은 내 몸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이 상태로 앉아 있던 게 한 5시간쯤 됐으니까. 죽기 직전의 상태라고 해야 할까.

“절호의 기회잖아? 아버지의 복수도 하고, 사상 최악의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그런 기회.”

현재 몸 상태가 최악이긴 했으나,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서 살아날 수 있다.

헛된 자신감이 아니라, 나는 정말 살아날 자신이 있었다.

부서진 다리? 회복시키면 그만이다.

진탕되고 박살 난 장기들? 재생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복수를 끝냈고 이 삶을 더 이상 이어 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살고 싶지, 않으니까.

정리하면 나는 곧 죽는다.

그것도 과다출혈로.

“시간이 얼마 없어. 영웅이 될 기회잖아? 뭘 망설여?”

빈사상태인 나를 향해 소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다가온다.

그리고, 천천히 들려지는 검.

소년이 이를 악문다.

덜덜 떨리는 손과 덜덜 떨리는 검.

그렇게.

툭-

검이 떨어졌다.

“흑…… 흑…….”

흐느끼던 꼬마의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결과는 간단했다.

소년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

하지만.

“잘했다.”

“흑…… 네?”

감각이 모호한 팔을, 최대한 들어 올려 소년의 머리에 올렸다.

“야, 막말로 네가 날 죽이면 편하게 살 수 있겠냐? 영웅이라느니, 온갖 수식어로 도배돼서 남은 일생 피곤할 일만 졸라게 일어날 거 아니야? 그거 감당할 수 있겠어?”

잠시 말을 멈췄다.

유치해 보이긴 하지만, 진심이다.

소년병, 그러니까 나랑 같은 이름을 쓰는 잭이라는 꼬마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나처럼 후회하면서 살지 마라. 넌 나랑 다르게 아직 어리잖아?”

소년에 비친 눈동자 속의 나는, 분명 웃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뚝뚝-

소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를 두드린다.

뭐야. 마음 약해지게.

“가서 사람들한테 전해. 악마는 오늘 죽었고, 전쟁은 끝났다고.”

“아…….”

웃음을 거두지 않은 내게, 소년이 묻는다.

“아저씨는 왜, 왜 그런 힘을 가지고…… 그렇게 사신 건가요.”

이거 답하기 꽤 어려운 질문인데.

“그러게,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게 끝이었다.

느껴진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손에서 힘과 감각이 사라지는 게.

이어서 눈은 침침해지고, 감으려는 의지가 없었음에도 눈이 감긴다.

천천히.

숨을 쉰다는 생각도 잊었고, 주변 소리가 멎었다.

적막함.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

나는 알 수 있었다.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했다.

Chapter 1



꿈을 꾼 것 같았다.

어리고 어리던 그 시절,

피가 섞인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운 아버지라는 사람과 내가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돌아가셔서 그림으로만 보았던 초상화 속의 어머니.

그리고 가문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그 이름이 알려질 정도의 미인인 누나와 나를 무던히도 괴롭힌 둘째까지.

그 모든 것들이 기억난다.

이어서 잭 발란티에라는 이름을 버린 뒤 검귀劍鬼가 되어 대륙을 질타하던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이게 꿈인지 저게 꿈인지 헷갈릴 정도다.

둘 다 너무 사실적이었으니까.

나는 죽은 걸까.

죽은 게 맞는 걸까.

혹시 이건 주마등이 아닐까.

전신 거울 앞에 선 채로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굴에 새겨져 있어야 할 상처는 사라져 있었고, 있어서는 안 될 젖살까지 자리해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지금의 현상을 인지한 뒤 약 1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래서 더 미치겠다.

내가 일으킨 제2차 대륙전쟁, 그곳에서 나는 승자였고 무자비한 살인자였으며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복수 하나만 바라보고 달린 나는 ‘서대륙’을 지배하는 단일 국가인 툴칸 제국을 무너트렸고 툴칸이라는 이름을 쓰는 모든 생명체를 죽였다.

나는 쟁취했으며 항상 승리했다.

모든 목적을 이뤘고, 만족했다.

그래서 다가오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살아갈 이유가 더는 내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심장의 기능이 정지했다.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지금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흑마법도 아니고, 환술도 아닌 거 같고, 진짜…… 과거로 돌아온 건가.”

전신거울에 비친 흑발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꼬맹이.

분명 20년 전 14살 때의 내 모습이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도 않은 어린아이이자, 유약하디유약했던 그때의 내 모습을 한 아이가 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과거로 돌아온 첫째 날, 아침이 밝았다.



* * *



테슬란 왕국의 발란티에 후작가는 나름대로 명망 있는 가문이자 대를 이어 국왕에게 충성하는 친국왕파에 속한 가문이었다.

나는 그 가문에서 태어난 셋째이며, 집안의 막내다.

왕국에서 후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가문의 막내.

가주라는 자리에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거의 평생을 놀고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상적인 자리다.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었지만 이곳 발란티에 후작가에는 예외로 적용했다.

‘여기가 장미 정원이었나.’

장미 정원.

후작가 본관 구석에 위치한 일종의 별채라고 해야 할까.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은 장미가 한가득 펼쳐져 있는 정원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이것도 허울에 불과했다.

이곳은 일종의 유배지라고도 불린다.

후견인도, 그렇다고 지지하는 가신 가문 하나 없는 막내를 가능하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는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는 곳.

그렇기에 유배지라는 단어로 불려도 한 점의 어색함이 없는 장소.

그게, 바로 이곳 장미 정원이다.

마당 입구에 털썩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었다.

푸르디푸른 하늘과 맑은 날씨.

그 절묘한 조화는 단순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질 정도다.

후작가의 역대급 막내아들


지은이 : 넉울히

제작일 : 2019.10.2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우문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449-6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