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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은이) | 이경아 (옮긴이) |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03-27 | 원제 Feminism Is for Everybody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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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276쪽 | 188*128mm (B6) | 295g | ISBN : 978895464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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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가 본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새창으로 보기
시이소오 ㅣ 2017-11-12 ㅣ 공감(33)댓글 (8)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하는 건 언제나 위험한 일이자 멍청한 일이다. 특히나 남성으로서. 뭐라고 말하건 욕먹기 참 쉽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면 침묵이 금이다. 본전도 못 찾는다. 페미니즘 책에 대한 독후감 역시 안 쓰는 게 쓰는 것 보다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근질거려......

 

이 책을 읽고서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었나 새삼스레 놀란다. 거의 모든 담론들이 페미니즘에 수렴된다. 젠더, 인종, 계급, 자본주의, 식민주의, 결혼, 육아, 가사노동, 사랑, ......

 

이 나라에서 벨 훅스는 너무 일찍 도착한 게 아닐까? 한 이십년 후라면 모를까. 내가 이 책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부디 페미니즘이 한층 개화한 이후인 2029년이라고 상상하고 읽어주시길.


페미니즘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선진국이라면 다르겠지만 벨 훅스의 페미니즘 내부 비판을 받아들이기에 이 땅의 페미니즘은 아직 꽃 한 번 피워본 적이 없다. 과연 한국에서 인지도를 갖춘 페미니스트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 페미니스트 내부 진영에서 벨 훅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혁명적 페미니즘을 가장 잘 포용한 곳은 학계였다. 학계에서는 혁명적 페미니즘을 이론으로 정립해 발표했지만, 정작 대중은 이 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결국 이 이론은 우리 중에서도 학식이 뛰어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대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특권층의 담론으로 자리잡았으며 그런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따지고 보면 대중은 이런 책에 담긴 메시지를 거부한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메시지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p32.

 

주디스 버틀러 책을 읽다 너무 어려워 던져버린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주디스 버틀러를 읽어야 한다면 나는 포기하겠다. 페미니즘이 나라를 불문하고 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그들만의 언어로 말해진다면 과연 일반대중들이 페미니즘을 자신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장 윤김지영의 <헬페미니스트 선언>만 하더라도 읽기 수월한 책이 아니다. 페미니즘이란 간단히 말해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려는 운동이 아닌가? 그런데 현대 페미니즘은 너무 어렵다.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현란한 수사가 난무해야하지? 페미니즘이라는 유리병에 든 편지는 청소 노동자 여성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을까? 편지라고? 이건 암호문이 아닐까?

 

계혁적 페미니즘은 그들에게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일터에서 남성중심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좀더 주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성차별주의가 여전히 만연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기존체계 내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한 궂은일은 착취당하는 종속된 하층 계급 여성들이 떠맡을 터였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의 종속을 수용하고 오히려 이와 결탁함으로써 기존 가부장제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성차별주의와도 동맹을 맺은 셈이다. p32

 

지난날 이 땅의 운동권들은 기득권에 부역하여 권력과 명예, 부를 움켜쥐었다.

과연 이 땅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계급권력을 가진 여성들이 기회주의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고 한편으로 페미니즘 정치의 기반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그들을 다시 종속시킬 가부장제의 유지를 도왔다면 그들은 페미니즘만 배신한 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배신한 셈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계급 문제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연대를 위한 토대를 쌓아야 한다. p108

 

계급 문제를 외면한 페미니즘은 자칫 특권층 여성들의 티파티 모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특권층 여성들이 말하는 평등은 나도 금융 자본가와 평등해지겠다는 것이지 공장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 페미니즘 지도자들이 자국 내 젠더 평등의 필요에 대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드높였을 때, 그들은 비슷한 운동이 전 세계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이 해방되었기에 이제 자기네보다 운 없는 자매들, 특히 3세계여성들을 해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신식민주의적 온정주의는 보수건 진보건 백인 여성들만이 페미니즘의 실질적인 대변자가 되게끔 유색인종 여성들을 일찌감치 뒷전으로 보내버렸다. p114

 

벨 훅스는 흑인이다. 저자는 혁명적 페미니스트로서 주로 - 특권층 백인 여성들로 이루어진- 제국주의-자본주의-백인우월주의-가부장제와 결탁한- ‘개혁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엘리트 계급이다. 서울- 고학력- 부르주아. 과연 한국 페미니즘은 특권층 백인 여성들처럼 시혜적 페미니즘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일터에서 여성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여성이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계급을 막론하고 구직자 여성들의 취업을 도우려는 노력과 더불어서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의제를 이루었더라면,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의 관심을 아우르는 운동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출세에 혈안이 되어 여성의 고임금 전문직 진출에만 관심을 쏟아 대다수의 여성들을 페미니즘 운동에서 멀어지게 했다. 또한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한 부르주아 여성이 증가했다고 해서 여성 전체가 경제력을 획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 외면했다. 그들이 빈곤층과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살폈다면, 여성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계급을 불문하고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추세도 포착했을 것이다. p128

 

벨 훅스는 끊임없이 가부장제-자본주의와 결탁한 백인 특권층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외면한 계급, 인종의 문제를 페미니즘 내부 담론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그녀는 가정 폭력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이 주도한 가정 폭력의 문제를 도외시하지도 않는다.

 

개혁주의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어떻게든 부각하기 위해 여성을 언제나 그리고 유일한 피해자로 묘사하곤 한다. 아동에게 지독한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중 여성이 많다는 사실에는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데다, 이것이 가부장제 폭력의 또 다른 형태임을 외면한다. p152

 

그러니까 벨 훅스의 이런 관점들이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불편하지 않을까?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가하는 차별에만 논의를 집중하는 반면 벨 훅스는 여성이 저지르는 차별 역시도 페미니즘 담론으로 수용하려 한다. 학계를 기반으로한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벨 훅스는 영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아닐까. 심지어 벨 훅스는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페미니즘마저 비판한다.

 

벨 훅스가 보기에 남성이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남성중심주의가 문제다. 단순한 성 이분법이 아닌 제도의 문제로 살펴볼 때, 여성 역시도 성차별주의가 유지되고 영구화되는데 동참하고 있을 수 있다.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는 여성이지만 성차별주의자며 가부장제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페미니즘 운동 내의 반남성 분파는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그런 남자들 때문에 모든 남성은 억압자라거나 모든 남성은 여성을 혐오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힘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억압자/피억압자라는 단순한 범주화로 남성과 여성을 극단적으로 갈라놓음으로써 손쉬운 계급 상승과 가부장제 권력 배분을 노렸던 페미니스트들의 이익과 합치했다. 이들은 모든 여성을 피해자로 재현하기 위해 모든 남성을 적으로 간주했다. 남성에 대한 적대는 일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계급 특권과 계급 권력을 향한 욕망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이었다.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을 거부하라고 요구했던 이 활동가들은 여성이 남성과 공유하는 돌봄의 유대도, 성차별주의자인 남성이 여성을 묶어두는 경제적, 감정적 결속도 직시하려 들지 않았다. p164

 

기존의 가부장제에 충격을 가하기 위해 남성혐오 페미니즘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메갈.

그러나, 페미니즘이 멀리 가기 위해선 모든 남성을 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과연 바람직할까. 기득권을 움켜쥔 일부 페미니스트에겐 벨 훅스만큼 재수 없는 여자도 없을 것 같다. 남자보다도 싫을 듯.

 

기존의 페미니스트는 이 책을 일종의 예방 주사라 생각하자.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백인 특권층 페미니즘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벨 훅스에 대해 분노한다면 벨 훅스가 자신이 은폐한 어떤 것을 폭로했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땅에서 벨 훅스는 너무 일찍 왔다. 사실 우리는 벨 훅스를 논할 때가 아니다. 한국 전쟁 전후로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작금의 우리에겐 부족할지언정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때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메갈을 비난하기엔 너무 이르다. 지금으로선 메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만일 페미니즘이 무르익은 시기가 온다면...

 

나와 같은 나쁜 페미니스트입장에서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그 누구보다도 중용의 페미니즘이라 할 만하다. 남성을 외면하고, 가난한 자를 소외시키는 페미니즘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 이분법적인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유아적이다. 남성 가부장제도 문제지만 여성 가부장제 역시 문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페미니즘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계급 상승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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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나오는 새창으로 보기
시간여행자 ㅣ 2017-10-27 ㅣ 공감(1)댓글 (0)
요즘 많이 듣는 이야기 ..페미니즘.. 읽으면서 공감도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알게 되는 책 두번은 읽어야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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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새창으로 보기
남달 ㅣ 2017-10-25 ㅣ 공감(3)댓글 (0)
대한민국에서 정신이 건강한 남자로 살아가기 위한필독서! 페미니즘 하면 남성혐오가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전 평생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온 어머니, 누나에게 선물하려 합니다.#선물하고싶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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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 성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새창으로 보기
리니 ㅣ 2017-08-11 ㅣ 공감(1)댓글 (0)

 


  가끔 두려워질 때가 있었다. 의식 있는 사람이고 싶어하지만 내 속에서 어떤 차별적인 시선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목격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내가 보였다. 여성으로서 여성을 보는 시선이 얼룩질 때도 있었고 누군가가 당하는 차별을 자연스레 방관하고 인정할 때도 있었다. 부끄러웠고 배우고 싶었다. 계속 그렇게 고개를 숙이다 보면, 나 또한 은연중에 당하고 있었던 차별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조용히 억울한 마음을 삭이기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자그만 관심의 시작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였다. 바짝 호기심이 일었던 때라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작 걸음마 단계인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표지와, '엠마 왓슨이 추천한'이라는 카피보다, '모두를 위한'이라는 제목의 수식어가 마음에 들었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만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그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의아했던 부분들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 '벨 훅스'는 어렵고 학문적인 페미니즘 이론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만한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잘못된 정보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카더라와 오해들이 페미니즘의 발전을 저해한다 믿었다. 오랫동안 그러한 책을 찾던 작가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책을 직접 집필했다. "명료하고,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페미니즘 입문서를 말이다.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책은 놀라울 정도로 재밌게 읽힌다.

 

작가는 일단 페미니즘 정치의 역사와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 후,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한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구별한다. 그 과정에서 임신 선택권, 인종과 젠더, 페미니즘 남성성, 결혼과 육아, 페미니즘 성 정치 등의 쟁점과도 마주하는데, 현대에 와서 이러한 쟁점이 일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 페미니즘 신봉자들에게는 선택과 행동의 기회가 주어졌고, 기존의 잘못된 사회구조에 젖어 있던 사고와 행동을 유지한 채로는 아무리 페미니즘을 외친다 하더라도 성차별주의를 완전히 극복해낼 순 없었다. 지배와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 사고는 상호 관계와 상호의존의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우리에게 불평등이 초래한 결과를 바꾸고 동시에 지배를 종식할 방법을 제안한다 (262쪽)"고. 또한, 페미니즘은 백인 우월주의와 자본주의, 계급주의, 가부장제와 관련된 문제들을 포함한, 우리를 괴롭혀온 모든 것들에 대항하는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사회운동(236쪽)"이라고.

 

페미니즘을 둘러싼 온갖 부정적인 소문들을 듣고 '설마'하면서도 믿어본 적이 있는가. 남성과 여성이 욕설을 하고 서로를 비아냥대며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에 의하면, 페미니즘의 적은 단지 남성이 아니며 성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페미니즘을 읽어야 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시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16쪽,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페미니즘에 관해 어떤 책이나 잡지를 읽어봤는가. 페미니즘 담론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가. 페미니즘 활동가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나면, 그들이 아는 페미니즘은 십중팔구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일 뿐이며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 거기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98쪽,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속박되고 예속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불만을 ˝이름 없는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이 문제를 여성 전체의 위기인 양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고학력자 백인들의 위기였을 뿐이다. 그들이 가정에 속박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대해 불평할 때, 이 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은 일터로 향했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 중 다수에게 전업주부가 될 권리는 오히려 ‘해방‘처럼 보였을 것이다.

176쪽
남성중심주의만 강조하면 페미니즘 이론가들을 포함한 여성들이 여자가 다양한 형태로 아동을 학대하는 현실을 쉽사리 무시하게 한다. 우리 모두 가부장적 사고에 익숙해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지배할 권리가 있으며 어떤 수단으로든 힘없는 사람을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배의 윤리학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정도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235쪽,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비전의 맥박은 여전히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진실과 공명한다. 즉,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 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를 누리고, 누구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모든 것과 반대된다.

260쪽,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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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새창으로 보기
grace ㅣ 2017-07-16 ㅣ 공감(1)댓글 (0)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곧장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당신은 남성을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당신은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나는 나야말로 누구보다 진짜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덮어놓고 짐작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나 또한 이 글에 나오는 대개 사람들의 한 명이었다. 페미니즘 하면 남성에 대한 혐오와 자격지심으로 차 있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선입관을 갖고 페미니즘을 바라봤는지 그게 얼마나 잘 못 됐는지 서문에서부터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녀 대립 구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이 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해당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자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완전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페미니즘 혁명을 통해.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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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쓰기용으로 샀어요 새창으로 보기
동글동글 ㅣ 2017-07-09 ㅣ 공감(1)댓글 (0)
페미니즘이 요즘 자주 등장하는 용어라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딸아이가 무척 좋아하네요 특히 엠마왓슨 팬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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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당선작 나와 나와 나들의 페미니즘을 위하여 새창으로 보기
syo ㅣ 2017-07-05 ㅣ 공감(33)댓글 (10)

 

0.

 

          이야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부터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별 것도 아닌 내 표현력이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별 이야기나 되는 것처럼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얼음 커피 한 잔 가져다 놓고 쓴다.

 

 

1.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론일까?

 

          소련 망한거 봐라, 사회주의 그거 똥이다- 라는 공격을, 그거 진짜 사회주의 아니다, 스탈린 지 맘대로 한거지. 맑스는 그렇게 말한 적 없거든- 으로 받는다. 사회주의에 뭘 넣고 뭘 빼며,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짝퉁인지를 놓고 의견 대립이 아직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그들은 '현실'사회주의는 소련의 패망과 동시에 실패로 끝났다는 정도의 워딩으로 합의점을 찍고 또 다른 전장에서 으르렁거리기로 한다. 과연 사회주의의 범주는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자들?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자들? 그것도 아니면, 맑스가 불지옥에서 돌아와 울타리를 쳐줘야 하나?

 

          맑스/베른슈타인/스탈린/트로츠키가 주장하는 바가 각각 다르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모두 사회주의자이므로,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내부 모순된 이론으로 봐야 할까? 통상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주의의 카테고리를 조금 더 세분화해 변증법적 유물론/사회민주주의/스탈린주의/트로츠키주의의 경합으로 해석한다.

 

          페미니즘은 어떨까?

 

 

2.

 

          읽은 페미니즘 책 수가 늘어날수록 할 수 없는 행동이 늘어난다. 부끄러움이 늘어난다. 내가 싸질러 놓은 과거에서 풍기는 썩은내가 현재까지 침투해, 거울 속에서 머저리를 발견하고 인상 찌푸리는 빈도가 늘어난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이 모든 변화가, 특정한 사상을 0만큼 알고 있다가 10, 20만큼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것 같지 않다. 매번 조금씩 다른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양적인 변화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페미니즘은 책에서도 오고 밖에서도 온다. 높은 곳에도 있고 낮은 곳에도 있다. 거시에서도 피고 미시에서도 핀다.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매력이자 마력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성 소수자들은 물론 일정 수의 남성들 또한) 언어나 시선, 물리력, 사회압력에서 오는 젠더 폭력의 사례를 머릿속으로 구체화할 때,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한 장면에서 상황을 빌려와 주인공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볼 필요가 없다. 그저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일, 지난 주 밤에 겪었던 일, 지난 해 입사 원서를 넣으러 다니던 일들을 다이렉트로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의 자리에서 페미니즘이 온다. 그래서, syo가 페미니스트라고 치고, 정희진의 모든 책, 모든 글에 100% 동의한다 해도 syo의 페미니즘은 정희진의 페미니즘과 닮았을지언정 같지는 않다. 나는 정희진을 읽을 수 있을 뿐, 정희진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사상을 지니고 syo의 바깥과 마주하며 만들어지는 페미니즘은 오롯이 syo의 것이 된다. 

 

          얼마나 많은 페미니즘들이 경합해 왔으며, 지금도 때로는 어깨를 겯고, 때로는 어깨를 부딪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다양성의 별자리를 헤고 있다보면 까무룩해질 때가 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가 단순해 보일 정도로 넓게 펼쳐지는 스펙트럼.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무엇을 먼저 없애야 하는가, 무엇이 가장 나쁜가, 어디부터 적인가, 어디까지가 동지인가, 칼인가, 아니면 펜인가, 도대체 끝판 대장은 누구인가. 이 모든 문제에서 사상과 삶이 뒤엉키며 각자가 품는 답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런데 왜, 누가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끊어내고 추상적으로 묶어내, 하나의 사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걸까?

 

 

3.

 

하나의 전체 혹은 '복수의 전체'를 집합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집합은 닫혀 있고, 닫혀 있는 것은 모두 인공적으로 닫혀 있다. 집합이란 언제나 여러 부분들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나 전체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전체가 부분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특별한 의미에서 부분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 전체는 분할의 각 단계에서 본성을 바꾸는 일 없이 분할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전체는 정말로 분할 불가능한 연속성일 것이다."

_ 질 들뢰즈, <시네마 I>, 우노 구니이치 <들뢰즈, 유동의 철학> 45쪽에서 재인용

         집합은 두 가지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이 가야 할 길을 막을 수 있다.

 

         집합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 날카로운 칼이다. 포함의 뒷면은 배제고, 배제는 분열의 다른 이름이다. 안과 밖이 작은 연못의 헤게모니를 잡겠다고 피터지게 싸우게 만들고 당신은 유유히 바다로 가라. "divide and conquer"는 모든 제국/자본/기득권자들이 수 천년동안 즐겨 사용함으로써 역사를 통해 그 효용을 증명한 기가 막힌 전략이며 여전히 잘 작동한다. 

 

         집합이 닫혀 있으므로 집합 안의 원소들은 얌전하다. "3 이하 자연수들의 집합" 속의 1, 2, 3은 그저 1, 2, 3으로 존재할 뿐, 서로 연산하고 연산되며 상호작용을 통해 변용될 수 없다. 여성은 또한 노동자일 수도 있고, 흑인일 수도 있으며, 레즈비언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기에, 어떠한 여성도 단순히 '여성'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여러 입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용하는 1의 페미니즘은 자연히 2, 3의 페미니즘과 차이가 있다. 페미니즘은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의 연대를 통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거의 페미니즘의 운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합은 원소들간의 연대를 무참히 박탈한다.

 

 

4.

 

          훌륭한 페미니즘 연구자들이 많다. 페미니즘의 영토에는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어렵고 심오한 사상들이 즐비하지만, 누구도 그 영토의 독재적 지배자가 될 수는 없다. 사상은 연장이다. 세상을 고치기 위해 그 연장을 손에 든 이는 페미니스트 개인이다. 많은 것들을 연대하여 함께 해결해야 하겠지만,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나의 고유한 무기를 휘둘러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물결처럼 '우리'가 되어 흐르는 날 가운데서도, 그 '우리'가 나와 다른 나와 또다른 n개의 나로 이루어진 '나들'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나의 연장통을 채우는 것. 이게 syo가 2017년 7월 5일 현재 지니고 있는 페미니즘이다.

 

          나는 이 책이 페미니스트 '모두'를 하나의 실로 꿰어넣을 수 있는 페미니즘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벨 훅스의 페미니즘이 내 연장통에 꽤 큼직한 망치와 톱을 넣어줬으므로, 다른 이들에게도 크고 작은 다양한 연장 하나쯤 쥐어 주리라 상상하며, 이 책에 녹아 있는 그녀의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다는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5.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더 말하려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말을 말기로 했다. 긴 말 했지만, 긴 말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일기냐 리뷰나 잠깐 고민했지만, 내 리뷰는 원래 일기였다. 그리고 그건 잠깐 고민하고 말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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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책 새창으로 보기
byN ㅣ 2017-06-25 ㅣ 공감(1)댓글 (0)
-나는 과연 페미니스트인가에 대해 생각했을 때의 의문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근거한다. 과격한 페미니스트, 다른 의미의 성차별주의자들이 존재하고 그것은 온전한 페미니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여겨진다. 물론 여성으로서 두렵고 억울한 것들, 성차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차별이 있어선 안되고 모든 남성을 대상화하고 비난해서도 안된다. 그런부분들이 늘 불편했고 인정하기 힘들었다. 요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해!인 것이다.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편을 가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심사는 출산(월경)과 군대이다. 그것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은 휴전이라는 특수상황 탓에 한창 좋을 나이의 젊은 남성들의 시간을 국가에 헌신해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몹시 안타깝다. 이 문제는 성에 대한 문제가 아닌 국가가 그들의 청춘에 온당한 대우와 보상을 해줘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비교된 여성의 출산(월경)은 생리적인 특징이고 겪지 않은 당사자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군대 역시 마찬가지지만-). 최소 3-40년 매달 고통을 당해야하고 출산은 자기 생명을 건 숭고한 과정이다. 그것은 비교대상이 아닌 상호 존중되고 감사해야하는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18p'

-대원칙으로 보아 나는 분명 페미니스트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차이가 차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 다름과 차이가 인간을 성장시켰고 다른 것은 존중되어야할 가치이다. 획일적인 평등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인간애(나아가 생명존중사상)를 기반으로 한다. 내 개성과 자유와 권리를 인정받고 싶다면 타인의 그것 역시 존중하고 배려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양분화로 치달을 것이다.

-작가는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어른과 아이의 차별에 대해 언급한다. 하지만 유색인종인 나는 흑인이 황인종(아시안)에게 갖는 차별과 우월의식을 경험한 적이 있다. 결국 종으로 구분될 수 없는 피부색이 차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성에 대한 터부는 성차별로 변모한다. 음지의 성을 양지로 끌어내고 그것들이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다. 성의해방은 무분별한 성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성의 주체 즉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라고 건강한 성문화 그것 역시도 상호존중과 인간애에 답이 있는 게 아닐까? 존중과 배려, 건전한 소통이 성관계에도 필요한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물리적 약자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아이, 노인, 빈곤층, 장애인 등 모든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 증오범죄, 무차별 범죄들은 상대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이 두려운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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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짧지만 강한 페미니즘 대중서 새창으로 보기
글샘 ㅣ 2017-06-23 ㅣ 공감(8)댓글 (0)

제목의 번역이 어색하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열정적인 정치학으로서...

Feminism is for everything; passionate politics

 

페미니즘은 인간 해방의 이론이다

 

여성은 늘 남성들에게 억압받는 존재로 작용해왔다.

여성 노예들은 늘 임신 상태로 노예를 재생산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 후진국 땅에서도 '가임 여성 지도'라는 해괴망측한 발상이 공공연히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때는 낙태 금지가 법제화되어

사생아를 버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직 학교에서는 '성기 교육'에 머무른 후진국에서...

 

이 책에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측면에 모두 짧은 이야기들을 펼친다.

어렵지 않고 길거나 복잡하지도 않다.

아주 쉽고 당연한 것들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평균적으로 힘이 세다.

남자의 정자는 이기적 유전자가 성욕을 무한 발산시킨다.

이런저런 이유로 늘 성폭력이 벌어진다.

사회가 할 일은 범죄를 처벌하고 공론화하는 것이다.

예방과 교육에 힘쏟는 것이 국가의 할 일이다.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거나,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식, 심지어 아직도 순결 교육이라는 무지 몽매가 계몽 사상을 전파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아마 가장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학교를 제공하는 나라중의 하나일 것인 한국에서

여성 평등 지수는 늘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휴가와 육아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 단체 역시 2천년 전의 성경을 무기로,

강의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고, 여성들은 온순하게 복종하는 질서를 사회화한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기득권자들의 '기능론'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갈등론'의 칼날이다.

 

평등과 존중이라는 원칙,

동반자 관계를 실현하고 오래 지속하려면 상호 만족과 성장이 필수라는

믿음의 원칙 위에 세운 동료애적 관계의 가치를 알리는데 힘쓸 것.(195)

 

페미니즘과 동성애, 교회 등은 관계없어 보이지만,

밀접한 억압과 해방의 지점에서 격렬한 갈등이 있다.

 

당연히 페미니즘은 강해져야 하고,

정부는 후손을 교육해야 하고,

교회, 가부장제적 가족제도, 남성 중심의 회식 문화,

남성 중심의 과도한 업무 시간 등은 장기적으로 해소되어야 할 문제이다.

 

문제는 여자가 아니라,

문제는 인간이다.

 

남자보다 덜 해방된 여자의 해방이 목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고루 연대해서 싸워야 삶은 발전한다.

그래서 페미니즘 교육은 인간 교육의 필수 항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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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형제애(siblinghood)도 강력하다 새창으로 보기
cyrus ㅣ 2017-05-16 ㅣ 공감(29)댓글 (13)

 

 

 

『추노』는 조선시대 도망간 노비와 이를 쫓는 추노꾼의 삶을 다룬 사극 드라마이다. 『추노』의 첫 화가 방영되자마자 시청자들은 주인공 이대길(장혁 분)에게 ‘대길 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남자를 ‘형’이 아닌 ‘언니’라고 부르다니.『추노』를 안 본 사람은 별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남자들끼리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남자가 형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장면이 신선하다. 조선 시대 ‘언니’는 절친한 관계에서 쓰인 호칭이다. 그래서 동성의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끼리도 ‘언니’라고 부르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형(兄)’의 순우리말이 ‘언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가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속의 성차별이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1] 나는 벨 훅스(Bell Hooks)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언니’를 호출하고 싶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언니’는 자매로서의 언니가 아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고, 좀 더 가까운 사이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언니’ 호칭을 듣는 대상에 남성이 포함된다. 여기에 착안하여 나는 ‘언니들의 페미니즘’에 남성도 참여할 수 있다는 과감한 생각마저 하게 됐다. 내게 생각할 용기를 불어넣어준 훅스 언니가 고맙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혁명파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의 뿌리를 완전히 캐내어 버릴 기세로 등장했다. 그들은 ‘자매애는 강력하다(sister is powerful)’라는 문구를 내세워 남성들과 연대한 정치적 투쟁보다 여성들의 자매애를 부각했다. 벨 훅스는 이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남녀 간의 대립갈등과 투쟁의 문제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벨 훅스가 아주 간단하게 정의한 대로 페미니즘이란 남성 자체가 아닌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만들어 낸 오랜 착취와 억압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이를 종식하기 위해 싸우는 운동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게다가 자매애를 기반을 둔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점점 미미해졌다. 계급권력을 가진 백인 중산층 여성들은 여성 공동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은 백인 남성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는 흑인 또는 유색 인종 여성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힘을 약화한 것이다.

 

벨 훅스는 인종 및 계급을 뛰어넘어 모든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남성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체험을 주고받으며 자매애를 형성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대화는 조직적으로 형성된 강력한 목소리다. 그렇다면 남성도 남성 중심 사회를 거부하고,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어 힘껏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는 벨 훅스의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심지어 가끔 나 자신이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는 일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의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키보드 페미니스트(keyboard feminist)’였다. 인터넷상에서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게시물을 작성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오프라인상에서는 논란이 많은 성차별 문제(예를 들면 군 복무 가산점 제도 부활)를 만나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치기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안 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남성들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받아도,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해도 여성이 겪는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차별주의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의식화 과정’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벨 훅스는 ‘의식화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의식화 모임에 참석하려면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모임 참석자들은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 그다음에 토론과 논쟁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참석자는 거리낌 없는 대화를 통해 살면서 보지 못했던 성차별 의식, 즉 벨 훅스가 비유한 ‘내면의 적’을 발견하게 된다. 벨 훅스는 대중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을 조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식화 모임의 방침이 ‘모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도 모집할 수 있다.

 

나는 ‘자매애는 강력하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구호는 가부장제의 힘에 억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극적인 여성들을 동참하게 하는 매력적인 문장이다. 그렇지만, 남성의 참여를 배제한 자매애는 남성을 여성 운동에 동참하는 방향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순우리말 ‘언니’와 ‘언니들의 페미니즘’과의 조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소년과 남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면 자매 형제애(siblinghood)도 강력해질 수 있다. 내 생각, 또는 자매 형제애의 의미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을 거로 확신한다. 물론 자매 형제애도 한계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부 남성은 페미니즘을 ‘성공적인 연애와 결혼을 하기 위한 교양’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가짜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도 바꿔내지도 못한 채 페미니즘 정치의 기치를 내건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끝내 소멸해버릴 것이다. (45쪽)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남성 내부의 적, 바로 성차별주의 사고와 행동에 스스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말할 수 있는 적’에 대한 침묵은 페미니즘 운동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성과 함께 성차별 문제를 공유하고, 경험하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아져야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가능해진다. 형, 아니 언니들, 함께 합시다! 다음 후손들이 ‘여자 대 남자’ 대결 구도로 싸우지 않도록.

 

 

 

[1]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속의 욕심도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 (진영이 부른 번안곡 ‘모두가 천사라면’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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