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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은이) | 이경아 (옮긴이) |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03-27 | 원제 Feminism Is for Everybody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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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276쪽 | 188*128mm (B6) | 295g | ISBN : 978895464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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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 성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새창으로 보기
리니 ㅣ 2017-08-11 ㅣ 공감(1)댓글 (0)

 


  가끔 두려워질 때가 있었다. 의식 있는 사람이고 싶어하지만 내 속에서 어떤 차별적인 시선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목격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내가 보였다. 여성으로서 여성을 보는 시선이 얼룩질 때도 있었고 누군가가 당하는 차별을 자연스레 방관하고 인정할 때도 있었다. 부끄러웠고 배우고 싶었다. 계속 그렇게 고개를 숙이다 보면, 나 또한 은연중에 당하고 있었던 차별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조용히 억울한 마음을 삭이기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자그만 관심의 시작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였다. 바짝 호기심이 일었던 때라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작 걸음마 단계인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표지와, '엠마 왓슨이 추천한'이라는 카피보다, '모두를 위한'이라는 제목의 수식어가 마음에 들었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만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그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의아했던 부분들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 '벨 훅스'는 어렵고 학문적인 페미니즘 이론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만한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잘못된 정보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카더라와 오해들이 페미니즘의 발전을 저해한다 믿었다. 오랫동안 그러한 책을 찾던 작가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책을 직접 집필했다. "명료하고,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페미니즘 입문서를 말이다.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책은 놀라울 정도로 재밌게 읽힌다.

 

작가는 일단 페미니즘 정치의 역사와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 후,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한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구별한다. 그 과정에서 임신 선택권, 인종과 젠더, 페미니즘 남성성, 결혼과 육아, 페미니즘 성 정치 등의 쟁점과도 마주하는데, 현대에 와서 이러한 쟁점이 일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 페미니즘 신봉자들에게는 선택과 행동의 기회가 주어졌고, 기존의 잘못된 사회구조에 젖어 있던 사고와 행동을 유지한 채로는 아무리 페미니즘을 외친다 하더라도 성차별주의를 완전히 극복해낼 순 없었다. 지배와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 사고는 상호 관계와 상호의존의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우리에게 불평등이 초래한 결과를 바꾸고 동시에 지배를 종식할 방법을 제안한다 (262쪽)"고. 또한, 페미니즘은 백인 우월주의와 자본주의, 계급주의, 가부장제와 관련된 문제들을 포함한, 우리를 괴롭혀온 모든 것들에 대항하는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사회운동(236쪽)"이라고.

 

페미니즘을 둘러싼 온갖 부정적인 소문들을 듣고 '설마'하면서도 믿어본 적이 있는가. 남성과 여성이 욕설을 하고 서로를 비아냥대며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에 의하면, 페미니즘의 적은 단지 남성이 아니며 성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페미니즘을 읽어야 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시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16쪽,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페미니즘에 관해 어떤 책이나 잡지를 읽어봤는가. 페미니즘 담론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가. 페미니즘 활동가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나면, 그들이 아는 페미니즘은 십중팔구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일 뿐이며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 거기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98쪽,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속박되고 예속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불만을 ˝이름 없는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이 문제를 여성 전체의 위기인 양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고학력자 백인들의 위기였을 뿐이다. 그들이 가정에 속박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대해 불평할 때, 이 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은 일터로 향했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 중 다수에게 전업주부가 될 권리는 오히려 ‘해방‘처럼 보였을 것이다.

176쪽
남성중심주의만 강조하면 페미니즘 이론가들을 포함한 여성들이 여자가 다양한 형태로 아동을 학대하는 현실을 쉽사리 무시하게 한다. 우리 모두 가부장적 사고에 익숙해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지배할 권리가 있으며 어떤 수단으로든 힘없는 사람을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배의 윤리학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정도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235쪽,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비전의 맥박은 여전히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진실과 공명한다. 즉,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 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를 누리고, 누구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모든 것과 반대된다.

260쪽,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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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새창으로 보기
grace ㅣ 2017-07-16 ㅣ 공감(1)댓글 (0)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곧장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당신은 남성을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당신은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나는 나야말로 누구보다 진짜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덮어놓고 짐작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나 또한 이 글에 나오는 대개 사람들의 한 명이었다. 페미니즘 하면 남성에 대한 혐오와 자격지심으로 차 있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선입관을 갖고 페미니즘을 바라봤는지 그게 얼마나 잘 못 됐는지 서문에서부터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녀 대립 구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이 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해당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자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완전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페미니즘 혁명을 통해.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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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쓰기용으로 샀어요 새창으로 보기
동글동글 ㅣ 2017-07-09 ㅣ 공감(1)댓글 (0)
페미니즘이 요즘 자주 등장하는 용어라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딸아이가 무척 좋아하네요 특히 엠마왓슨 팬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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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당선작 나와 나와 나들의 페미니즘을 위하여 새창으로 보기
syo ㅣ 2017-07-05 ㅣ 공감(33)댓글 (10)

 

0.

 

          이야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부터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별 것도 아닌 내 표현력이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별 이야기나 되는 것처럼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얼음 커피 한 잔 가져다 놓고 쓴다.

 

 

1.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론일까?

 

          소련 망한거 봐라, 사회주의 그거 똥이다- 라는 공격을, 그거 진짜 사회주의 아니다, 스탈린 지 맘대로 한거지. 맑스는 그렇게 말한 적 없거든- 으로 받는다. 사회주의에 뭘 넣고 뭘 빼며,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짝퉁인지를 놓고 의견 대립이 아직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그들은 '현실'사회주의는 소련의 패망과 동시에 실패로 끝났다는 정도의 워딩으로 합의점을 찍고 또 다른 전장에서 으르렁거리기로 한다. 과연 사회주의의 범주는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자들?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자들? 그것도 아니면, 맑스가 불지옥에서 돌아와 울타리를 쳐줘야 하나?

 

          맑스/베른슈타인/스탈린/트로츠키가 주장하는 바가 각각 다르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모두 사회주의자이므로,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내부 모순된 이론으로 봐야 할까? 통상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주의의 카테고리를 조금 더 세분화해 변증법적 유물론/사회민주주의/스탈린주의/트로츠키주의의 경합으로 해석한다.

 

          페미니즘은 어떨까?

 

 

2.

 

          읽은 페미니즘 책 수가 늘어날수록 할 수 없는 행동이 늘어난다. 부끄러움이 늘어난다. 내가 싸질러 놓은 과거에서 풍기는 썩은내가 현재까지 침투해, 거울 속에서 머저리를 발견하고 인상 찌푸리는 빈도가 늘어난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이 모든 변화가, 특정한 사상을 0만큼 알고 있다가 10, 20만큼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것 같지 않다. 매번 조금씩 다른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양적인 변화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페미니즘은 책에서도 오고 밖에서도 온다. 높은 곳에도 있고 낮은 곳에도 있다. 거시에서도 피고 미시에서도 핀다.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매력이자 마력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성 소수자들은 물론 일정 수의 남성들 또한) 언어나 시선, 물리력, 사회압력에서 오는 젠더 폭력의 사례를 머릿속으로 구체화할 때,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한 장면에서 상황을 빌려와 주인공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볼 필요가 없다. 그저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일, 지난 주 밤에 겪었던 일, 지난 해 입사 원서를 넣으러 다니던 일들을 다이렉트로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의 자리에서 페미니즘이 온다. 그래서, syo가 페미니스트라고 치고, 정희진의 모든 책, 모든 글에 100% 동의한다 해도 syo의 페미니즘은 정희진의 페미니즘과 닮았을지언정 같지는 않다. 나는 정희진을 읽을 수 있을 뿐, 정희진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사상을 지니고 syo의 바깥과 마주하며 만들어지는 페미니즘은 오롯이 syo의 것이 된다. 

 

          얼마나 많은 페미니즘들이 경합해 왔으며, 지금도 때로는 어깨를 겯고, 때로는 어깨를 부딪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다양성의 별자리를 헤고 있다보면 까무룩해질 때가 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가 단순해 보일 정도로 넓게 펼쳐지는 스펙트럼.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무엇을 먼저 없애야 하는가, 무엇이 가장 나쁜가, 어디부터 적인가, 어디까지가 동지인가, 칼인가, 아니면 펜인가, 도대체 끝판 대장은 누구인가. 이 모든 문제에서 사상과 삶이 뒤엉키며 각자가 품는 답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런데 왜, 누가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끊어내고 추상적으로 묶어내, 하나의 사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걸까?

 

 

3.

 

하나의 전체 혹은 '복수의 전체'를 집합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집합은 닫혀 있고, 닫혀 있는 것은 모두 인공적으로 닫혀 있다. 집합이란 언제나 여러 부분들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나 전체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전체가 부분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특별한 의미에서 부분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 전체는 분할의 각 단계에서 본성을 바꾸는 일 없이 분할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전체는 정말로 분할 불가능한 연속성일 것이다."

_ 질 들뢰즈, <시네마 I>, 우노 구니이치 <들뢰즈, 유동의 철학> 45쪽에서 재인용

         집합은 두 가지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이 가야 할 길을 막을 수 있다.

 

         집합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 날카로운 칼이다. 포함의 뒷면은 배제고, 배제는 분열의 다른 이름이다. 안과 밖이 작은 연못의 헤게모니를 잡겠다고 피터지게 싸우게 만들고 당신은 유유히 바다로 가라. "divide and conquer"는 모든 제국/자본/기득권자들이 수 천년동안 즐겨 사용함으로써 역사를 통해 그 효용을 증명한 기가 막힌 전략이며 여전히 잘 작동한다. 

 

         집합이 닫혀 있으므로 집합 안의 원소들은 얌전하다. "3 이하 자연수들의 집합" 속의 1, 2, 3은 그저 1, 2, 3으로 존재할 뿐, 서로 연산하고 연산되며 상호작용을 통해 변용될 수 없다. 여성은 또한 노동자일 수도 있고, 흑인일 수도 있으며, 레즈비언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기에, 어떠한 여성도 단순히 '여성'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여러 입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용하는 1의 페미니즘은 자연히 2, 3의 페미니즘과 차이가 있다. 페미니즘은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의 연대를 통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거의 페미니즘의 운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합은 원소들간의 연대를 무참히 박탈한다.

 

 

4.

 

          훌륭한 페미니즘 연구자들이 많다. 페미니즘의 영토에는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어렵고 심오한 사상들이 즐비하지만, 누구도 그 영토의 독재적 지배자가 될 수는 없다. 사상은 연장이다. 세상을 고치기 위해 그 연장을 손에 든 이는 페미니스트 개인이다. 많은 것들을 연대하여 함께 해결해야 하겠지만,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나의 고유한 무기를 휘둘러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물결처럼 '우리'가 되어 흐르는 날 가운데서도, 그 '우리'가 나와 다른 나와 또다른 n개의 나로 이루어진 '나들'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나의 연장통을 채우는 것. 이게 syo가 2017년 7월 5일 현재 지니고 있는 페미니즘이다.

 

          나는 이 책이 페미니스트 '모두'를 하나의 실로 꿰어넣을 수 있는 페미니즘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벨 훅스의 페미니즘이 내 연장통에 꽤 큼직한 망치와 톱을 넣어줬으므로, 다른 이들에게도 크고 작은 다양한 연장 하나쯤 쥐어 주리라 상상하며, 이 책에 녹아 있는 그녀의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다는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5.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더 말하려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말을 말기로 했다. 긴 말 했지만, 긴 말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일기냐 리뷰나 잠깐 고민했지만, 내 리뷰는 원래 일기였다. 그리고 그건 잠깐 고민하고 말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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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책 새창으로 보기
byN ㅣ 2017-06-25 ㅣ 공감(1)댓글 (0)
-나는 과연 페미니스트인가에 대해 생각했을 때의 의문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근거한다. 과격한 페미니스트, 다른 의미의 성차별주의자들이 존재하고 그것은 온전한 페미니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여겨진다. 물론 여성으로서 두렵고 억울한 것들, 성차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차별이 있어선 안되고 모든 남성을 대상화하고 비난해서도 안된다. 그런부분들이 늘 불편했고 인정하기 힘들었다. 요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해!인 것이다.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편을 가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심사는 출산(월경)과 군대이다. 그것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은 휴전이라는 특수상황 탓에 한창 좋을 나이의 젊은 남성들의 시간을 국가에 헌신해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몹시 안타깝다. 이 문제는 성에 대한 문제가 아닌 국가가 그들의 청춘에 온당한 대우와 보상을 해줘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비교된 여성의 출산(월경)은 생리적인 특징이고 겪지 않은 당사자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군대 역시 마찬가지지만-). 최소 3-40년 매달 고통을 당해야하고 출산은 자기 생명을 건 숭고한 과정이다. 그것은 비교대상이 아닌 상호 존중되고 감사해야하는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18p'

-대원칙으로 보아 나는 분명 페미니스트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차이가 차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 다름과 차이가 인간을 성장시켰고 다른 것은 존중되어야할 가치이다. 획일적인 평등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인간애(나아가 생명존중사상)를 기반으로 한다. 내 개성과 자유와 권리를 인정받고 싶다면 타인의 그것 역시 존중하고 배려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는 겉잡을 수 없는 양분화로 치달을 것이다.

-작가는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어른과 아이의 차별에 대해 언급한다. 하지만 유색인종인 나는 흑인이 황인종(아시안)에게 갖는 차별과 우월의식을 경험한 적이 있다. 결국 종으로 구분될 수 없는 피부색이 차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성에 대한 터부는 성차별로 변모한다. 음지의 성을 양지로 끌어내고 그것들이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다. 성의해방은 무분별한 성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성의 주체 즉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라고 건강한 성문화 그것 역시도 상호존중과 인간애에 답이 있는 게 아닐까? 존중과 배려, 건전한 소통이 성관계에도 필요한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물리적 약자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아이, 노인, 빈곤층, 장애인 등 모든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 증오범죄, 무차별 범죄들은 상대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이 두려운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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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짧지만 강한 페미니즘 대중서 새창으로 보기
글샘 ㅣ 2017-06-23 ㅣ 공감(8)댓글 (0)

제목의 번역이 어색하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열정적인 정치학으로서...

Feminism is for everything; passionate politics

 

페미니즘은 인간 해방의 이론이다

 

여성은 늘 남성들에게 억압받는 존재로 작용해왔다.

여성 노예들은 늘 임신 상태로 노예를 재생산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 후진국 땅에서도 '가임 여성 지도'라는 해괴망측한 발상이 공공연히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때는 낙태 금지가 법제화되어

사생아를 버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직 학교에서는 '성기 교육'에 머무른 후진국에서...

 

이 책에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측면에 모두 짧은 이야기들을 펼친다.

어렵지 않고 길거나 복잡하지도 않다.

아주 쉽고 당연한 것들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평균적으로 힘이 세다.

남자의 정자는 이기적 유전자가 성욕을 무한 발산시킨다.

이런저런 이유로 늘 성폭력이 벌어진다.

사회가 할 일은 범죄를 처벌하고 공론화하는 것이다.

예방과 교육에 힘쏟는 것이 국가의 할 일이다.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거나,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식, 심지어 아직도 순결 교육이라는 무지 몽매가 계몽 사상을 전파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아마 가장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학교를 제공하는 나라중의 하나일 것인 한국에서

여성 평등 지수는 늘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휴가와 육아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 단체 역시 2천년 전의 성경을 무기로,

강의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고, 여성들은 온순하게 복종하는 질서를 사회화한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기득권자들의 '기능론'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갈등론'의 칼날이다.

 

평등과 존중이라는 원칙,

동반자 관계를 실현하고 오래 지속하려면 상호 만족과 성장이 필수라는

믿음의 원칙 위에 세운 동료애적 관계의 가치를 알리는데 힘쓸 것.(195)

 

페미니즘과 동성애, 교회 등은 관계없어 보이지만,

밀접한 억압과 해방의 지점에서 격렬한 갈등이 있다.

 

당연히 페미니즘은 강해져야 하고,

정부는 후손을 교육해야 하고,

교회, 가부장제적 가족제도, 남성 중심의 회식 문화,

남성 중심의 과도한 업무 시간 등은 장기적으로 해소되어야 할 문제이다.

 

문제는 여자가 아니라,

문제는 인간이다.

 

남자보다 덜 해방된 여자의 해방이 목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고루 연대해서 싸워야 삶은 발전한다.

그래서 페미니즘 교육은 인간 교육의 필수 항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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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형제애(siblinghood)도 강력하다 새창으로 보기
cyrus ㅣ 2017-05-16 ㅣ 공감(29)댓글 (13)

 

 

 

『추노』는 조선시대 도망간 노비와 이를 쫓는 추노꾼의 삶을 다룬 사극 드라마이다. 『추노』의 첫 화가 방영되자마자 시청자들은 주인공 이대길(장혁 분)에게 ‘대길 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남자를 ‘형’이 아닌 ‘언니’라고 부르다니.『추노』를 안 본 사람은 별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남자들끼리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남자가 형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장면이 신선하다. 조선 시대 ‘언니’는 절친한 관계에서 쓰인 호칭이다. 그래서 동성의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끼리도 ‘언니’라고 부르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형(兄)’의 순우리말이 ‘언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가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속의 성차별이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1] 나는 벨 훅스(Bell Hooks)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언니’를 호출하고 싶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언니’는 자매로서의 언니가 아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고, 좀 더 가까운 사이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언니’ 호칭을 듣는 대상에 남성이 포함된다. 여기에 착안하여 나는 ‘언니들의 페미니즘’에 남성도 참여할 수 있다는 과감한 생각마저 하게 됐다. 내게 생각할 용기를 불어넣어준 훅스 언니가 고맙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혁명파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의 뿌리를 완전히 캐내어 버릴 기세로 등장했다. 그들은 ‘자매애는 강력하다(sister is powerful)’라는 문구를 내세워 남성들과 연대한 정치적 투쟁보다 여성들의 자매애를 부각했다. 벨 훅스는 이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남녀 간의 대립갈등과 투쟁의 문제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벨 훅스가 아주 간단하게 정의한 대로 페미니즘이란 남성 자체가 아닌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만들어 낸 오랜 착취와 억압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이를 종식하기 위해 싸우는 운동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게다가 자매애를 기반을 둔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점점 미미해졌다. 계급권력을 가진 백인 중산층 여성들은 여성 공동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은 백인 남성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는 흑인 또는 유색 인종 여성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힘을 약화한 것이다.

 

벨 훅스는 인종 및 계급을 뛰어넘어 모든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남성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체험을 주고받으며 자매애를 형성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대화는 조직적으로 형성된 강력한 목소리다. 그렇다면 남성도 남성 중심 사회를 거부하고,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어 힘껏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는 벨 훅스의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심지어 가끔 나 자신이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는 일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의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키보드 페미니스트(keyboard feminist)’였다. 인터넷상에서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게시물을 작성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오프라인상에서는 논란이 많은 성차별 문제(예를 들면 군 복무 가산점 제도 부활)를 만나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치기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안 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남성들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받아도,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해도 여성이 겪는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차별주의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의식화 과정’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벨 훅스는 ‘의식화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의식화 모임에 참석하려면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모임 참석자들은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 그다음에 토론과 논쟁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참석자는 거리낌 없는 대화를 통해 살면서 보지 못했던 성차별 의식, 즉 벨 훅스가 비유한 ‘내면의 적’을 발견하게 된다. 벨 훅스는 대중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을 조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식화 모임의 방침이 ‘모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도 모집할 수 있다.

 

나는 ‘자매애는 강력하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구호는 가부장제의 힘에 억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극적인 여성들을 동참하게 하는 매력적인 문장이다. 그렇지만, 남성의 참여를 배제한 자매애는 남성을 여성 운동에 동참하는 방향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순우리말 ‘언니’와 ‘언니들의 페미니즘’과의 조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소년과 남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면 자매 형제애(siblinghood)도 강력해질 수 있다. 내 생각, 또는 자매 형제애의 의미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을 거로 확신한다. 물론 자매 형제애도 한계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부 남성은 페미니즘을 ‘성공적인 연애와 결혼을 하기 위한 교양’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가짜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도 바꿔내지도 못한 채 페미니즘 정치의 기치를 내건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끝내 소멸해버릴 것이다. (45쪽)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남성 내부의 적, 바로 성차별주의 사고와 행동에 스스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말할 수 있는 적’에 대한 침묵은 페미니즘 운동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성과 함께 성차별 문제를 공유하고, 경험하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아져야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가능해진다. 형, 아니 언니들, 함께 합시다! 다음 후손들이 ‘여자 대 남자’ 대결 구도로 싸우지 않도록.

 

 

 

[1]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속의 욕심도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 (진영이 부른 번안곡 ‘모두가 천사라면’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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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혁을 위한 작은 지침서 새창으로 보기
꼼쥐 ㅣ 2017-05-02 ㅣ 공감(21)댓글 (0)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현모양처'라고 대답하는 여학생들이 무척이나 많았었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의 대답이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획일화된 북한 주민의 답변을 듣는 듯 섬뜩한 느낌마저 들겠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도 현모양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신사임당'이 자주 들먹여지곤 했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사정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대학에 진학했던 소수의 여대생들은 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과 여성해방이라는 젠더적 사명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또래의 남학생들과는 상당히 다른 대학생활을 선택하곤 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민주화를 위한 국가권력과의 투쟁에 앞장서는 한편 여성 운동의 기수로서 부조리한 현실을 까탈스럽게 따지거나 가부장제 사회에 익숙한 남학생들과 시도 때도 없이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런 까닭에 당시의 남학생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재수없다', '까탈스럽다', '별나다' 등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느낌이 대부분이었다. 페미니즘 운동에 몸담았던 당시의 여대생들은 가부장제 사회를 용인하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여대생들과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했던 대다수 남성들을 향해 강한 독기와 분노를 뿜어내곤 했다. 대한민국에서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을 선도했던 그들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동지들을 제외하면 다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피아의 구별이 확실했던 그들은 대한민국 내에서 섬이 아닌 섬 생활을 자처했던 셈이다.

 

"여성들은 연령을 불문하고 남성중심주의나 젠더 평등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분노하기만 하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 않은 채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배반하곤 했다." (p.43)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벨 훅스가 써낸 페미니즘 입문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우리나라 페미니즘 변천사와 견주어 차근차근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의 효용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성이 여성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페미니즘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생적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젠더로서의 여성과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은 엄연히 다른 문제일 터, 여성이면서도 남성중심주의자들 못지 않게 차별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저자는 안타깝게 지적한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8,90년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오히려 쇠퇴한 게 아닌가 싶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좋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동력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의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페미니스트 하면 남자들을 혐오하는 한 무리의 여성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들의 절대적인 숫자도 줄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들의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하고, 그에 대항하여 남성들을 혐오하는 여성들의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하면서 페미니즘 운동은 사회운동으로서의 명분마저 상실해가는 듯하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운동은 인터넷상의 남녀 대결 양상으로만 번졌을 뿐 사회운동으로서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권이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높아진 게 아니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법률이나 제도적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태도나 인식도 함께 발전했던 것은 아니다. 권력의 상층부는 여전히 남성들의 차지이고 그들은 징징대는 여성들을 향해 그들 몫의 일부를 적선하듯 던져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페미니즘 투쟁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페미니즘 운동만큼 가부장제가 여성과 남성의 행복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에 반페미니즘 역풍은 여전히 존재한다. 만일 페미니즘 운동이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영구화가 어떤 위험을 내포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했을 것이다." (p.261)

 

저자도 강조하고 있지만 페미니스트가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남성중심주의'이다 그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대다수 남성과 일부 여성으로부터 반발을 사는 이유는 위의 전제를 실행에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남성중심주의의 폐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곤경에 처했는지 따져볼 필요는 있지만 그런 이유로 현재의 남성들을 적대시한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페미니즘에 무지한 남성들을 계몽하고 성차별주의에 동조하는 여성들을 설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길고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지구상의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을 위한 작은 지침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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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사회운동이다! 새창으로 보기
설해목 ㅣ 2017-05-01 ㅣ 공감(21)댓글 (2)

작년부터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다. 관련 서적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사회적인 사건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페미니즘이건만 나는 사실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때 유행이겠거니 했다.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바뀔 게 있겠나 싶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페미니즘을 화제로 올리기가 좀 꺼려지기도 했다. 페미니즘이 무언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무지한만큼 무관심했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수많은 책들 중에 무엇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고른 책이 바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었다.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페미니즘 하면 여성이라는 하나의 성만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모두에 담긴 페미니즘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를 꺼려하던 혹은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던 그렇지만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던 이유들을 나름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알게 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지고 동참하고 싶어졌다.

 

# 페미니즘은 정의이자 사랑이다.

 

그들은 지배의 문화에 찌든 이 세상을 공동체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바탕이 된 참여적 경제의 세상으로, 인종과 젠더에 따른 차별이 없는 세상으로, 상호성과 상호의존에 대한 인정이 지배적인 정서를 이루는 세상으로, 지구의 생명을 지키며 모든 사람이 평화와 안녕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전 지구적인 생태주의 비전이 실현된 세상으로 바꾸는 꿈을 꾸었다. _p. 250

 

페미니즘의 비전이나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가 페미니즘을 믿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남성혐오, 여성혐오로 흘러가는 가십거리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서로에 대해 비난하기 일쑤였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제대로 수습조차 안 되는 페미니즘을 신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이 젠더를 초월하여 전 지구적인 비전을 갖고 정의와 사랑이 밑바탕이 되는 세상을 위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면 페미니즘을 신뢰해봐도, 페미니즘 운동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새로운 담론과 대안 만들기

 

대안도 없이 성차별주의적인 이미지만 비난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개입이다. 비판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_p.92

 

미래상을 그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실망과 함께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건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대안이나 새로운 담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젠더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성별에 따른 비난과 비판만으로는 개선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불신만을 키운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비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여성은 물론 남성까지도 관심가질만한 담론을 형성하고 충분한 의견교환을 통해 대안을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다면 페미니즘 정치는 여전히 이론과 실천의 결과로서 상호 간 행복의 비전을 제시하는 유일한 사회운동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여성들 연대의 첫걸음, 자매애

 

여성들의 정치적 연대는 항상 성차별주의를 약화시키고 가부장제를 전복시킬 판을 짠다. 여성들이 종속적인 지위의 여성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권력을 스스로 기꺼이 벗어던지지 않았더라면, 인종과 계급의 경계를 넘어 모두를 아우르는 자매애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을 지배하기 위해 계급이나 인종적 특권을 이용하는 한, 페미니즘의 자매애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다. _p.53~54

 

여성들의 정치적 연대가 과연 가능할까. 사실 지금도 드는 의구심이긴 하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이중적 삼중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게 현실이다. 저자가 인종적인 문제로 인한 여성들의 진정한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을 경험했듯이, 백인여성들이 일터에서 남성들과의 동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를 저버렸듯이,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는커녕 자신의 이익에 쫓아 다른 여성의 권리를 무시해버리는 걸 당연시하는 이상 여성들의 진정한 연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매애는 키운다고 키워지는 걸까. 무식한 소리같지만 전혀 모르는 여성도 내 언니, 여동생, 내 엄마, 이모, 할머니, 내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여성이라는 약자들의 연대가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하고 있다는 걸 우리 스스로가 증명하고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자매애는 더욱 돈독해질거라 믿는다.

 

# 주류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적 수용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제공하는 대중운동을 조직하지 않으면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은 주류 언론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정보로 인해 늘 힘을 잃고 말 것이다. _p.70

 

대중매체가 가정 폭력 장면을 연이어 보여주고 그에 관한 논의 또한 도처에서 진행중이지만, 대중은 남성이 저지르는 이러한 폭력의 사실을 끊어내기 위해 남성중심주의를 끝장내고 가부장제를 종식해야 한다고 거의 생각지 않는다. 대중매체는 왜 이런 폭력이 발생하는지를 가부장적 사고와 연결짓지 않은 채 그저 묻기만 한다. _p.254

 

이 책을 통해 깨달은 건, 페미니즘을 방해하는 강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박힌 주류 대중매체란 거다. 페미니즘이 조금씩 자리잡아가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생겨날 때마다 먹잇감을 만난 이리떼마냥 페미니즘을 물고 늘어지는 가부장제에 찌든 보수적인 대중매체가 여남은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정말로 예민하게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건 변화를 두려워하는, 교묘하게 페미니즘을 비난하고 가부장제를 부추기는 보수적인 대중매체여야 한다.

 

# 음지에서 양지로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널리 전하기 위해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는 집단적인 노력은, 페미니즘 정치는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기본 전제와 더불어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이 시작하는 운동에 필수불가결하다. 급진적인 면은 대개 음지로 밀려나게 마련이므로,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싶다면 페미니즘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_p.255

 

생각해보면 내가 차별을 최초로 경험한 건 바로 가정이다. 남아선호를 당연하게 여기시는 부모님 밑에서 뭔가 불만을 느끼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불합리한 대우를 견디거나 모른 채 하고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동시대 사람인 남동생과는 진지하게 우리가 겪었던 차별들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집집마다 알리려는 노력은 이런 면에서 필요한 것 같다. 가족들 사이에서부터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상적인 삶에 더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 예민한 사람이 되자

 

예민한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예민함은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민하다는 건 주어진 질서의 오류와 모순을 눈치챌 정도로 지적이며 동시에 강인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삶이라는 점에서 예민함이라는 감각은(푸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에의 배려 혹은 통치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예민함은 약자에게 강요되는 부정의한 제약을 거부하는 감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 권력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쥔 사람이다. _p.272, 권김현영의 해제 중에서..

 

이 책을 통해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할 정도로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에 둔감해져있던 건 아닌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상한 상황을 인식하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보고 싶다는 욕심도 가져본다. 나 스스로를 좀 더 예민한 사람으로 단련하고 싶다. 그 다짐의 시작이 바로 이 책과 함께여서 다행이다. 한쪽으로 치우쳤을지도 모를 혹은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했을지도 모를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태도에 기준점을 만들어준 이 책으로 페미니스트라는 또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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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걷어 냅시다! 새창으로 보기
가족 ㅣ 2017-04-25 ㅣ 공감(10)댓글 (0)

최근 1-2년 사이, 페미니즘에 대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대선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겠지만, 선거철에 페미니즘 관련하여 저마다 앞 다퉈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분명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성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을 표현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 페미니스트야?” 라는 질문에는 움찔하는 상황이 여전히 많은데, 이러한 장면이 질문하는 사람이나, 질문을 받고 움찔하는 사람 모두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페미니즘 책모임을 시작하기 전 몇몇 친구들로부터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욕인 줄 알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책모임을 시작한 뒤에 몇몇 사람들은 그저 책만 읽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런 모임을 갖는 것이 너무 공격적이지 않냐는 푸념을 늘어놓거나, “역차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냥 몇몇이 모여 책을 읽기 시작한 것뿐인데 우리는 공격적인사람들이 된 것이고, ‘역차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도 이러한 상황을 지적한다.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16)

 

페미니스트하면 남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거나, ‘페미니즘하면 무슨 주체사상인 것처럼 낙인을 찍는 경우들이 있는데, 정말 막연한 오해이고 지나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저자의 말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보니 페미니즘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고, 오해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켜켜이 쌓여 있던 무관심과 오해들을 들춰내면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18)이었고 페미니스트는 남자든, 여자든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이었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온통 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였고, 우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이 남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성차별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성차별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은 남자만이 아닌 것이다. 일례로 저자는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지적하며,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힘으로 지배하려는 생각과 행동들, 즉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와 행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적 사고와 행동을 익히기 위하여 의지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45)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놀랐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막연하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남성들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여성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가부장적인 문화와 그에 따른 악한 습관들은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우리 생활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하늘에 덮인 것처럼 심한 경우에는 그것이 눈에 보여 마스크를 써야 할 때도 있고, 조금 덜 하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가 먹고, 잠자고, 일하는 모든 곳에서 얼마나 많은 성차별적인 사고들과 행동들이 있고, 그것이 왜 나쁘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저자는 그리 많지 않은 지면을 통해서 몸, 외모, 계급, , 폭력, 육아, 결혼 등의 주제를 페미니즘과 연관하여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얼마나 적실하고, 긴급하게 필요한 것인지를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이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진정한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인지와 포용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에, 사랑이 인정과 애정, 책임감, 헌신, 그리고 지식을 모두 품어야 한다는 사실에 수긍한다면 정의 없이 사랑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236)

 

정말 맞는 얘기 아닌가?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때면 꼭 이런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난 여자 좋아하는데?”, “난 여자들한테 잘해주는데?” 사실 나도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성차별적인 사고와 행동들에 둘러싸여 있는지 모른다. 내 주변에는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목사로서 부탁드린다. 우리 같이 공부 좀 하자. 그리고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어렵지도 않고 재미도 있으니 그렇게 공부할 때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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