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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와이스만 (지은이) | 류한수 (옮긴이) | 실천문학사 | 200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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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 720쪽 | 192*117mm | 1008g | ISBN(13) : 97889392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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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당선작 몰락의 아이콘들 새창으로 보기
맥거핀 ㅣ 2011-10-09 ㅣ 공감(7)댓글 (8)

 

1.
지난주 와우북페스티벌에 들러 몇 권의 책과 함께 수잔 와이스만의 <빅토르 세르주 평전>을 들고 왔다. 러시아 혁명을 다룬 주요한 저작 중의 하나인 <러시아 혁명의 진실>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그다(이 책 <빅토르 세르주 평전>에는 원제에 충실하게 <러시아 혁명의 첫 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책날개에 붙어있는 그의 삶을 정리한 간략한 글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참 전형적이다. "러시아의 혁명 인민주의자 집안에서 태어난 세르주(본명 : 빅토르 키발치치)는 열다섯 살까지 벨기에에서 살았다. 고국 러시아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1919년, 스물여덟살 되던 해에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으며 다양한 정치적 임무를 띠고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3년 독일판 10월혁명이 실패한 뒤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 좌익반대파와 함께했다. 언제나 정치적 반대파였던 세르주는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평생을 핍박 속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결국 1936년 러시아에서 쫓겨나 파리와 마르세유를 전전하다가 지독한 가난과 생명의 위협 속에 1947년 멕시코에서 눈을 감았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의 삶이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실패하고 몰락한 자의 초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태어났고(세르주는 어린 시절 딱딱하게 말라붙은 빵을 커피에 적셔 먹는 끼니를 서술했으며, 그의 동생은 쫄쫄 굶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아홉 살에 굶어 죽었다), 한 때 꿈을 가지고 혁명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그 혁명이 그 혁명을 지지해준 자들에게 적으로 돌아서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그 반대편으로 돌아서고자 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그가 결코 지지할 수 없는 것이 있었고, 아무 조직과 힘이 없었던 그가 오로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고할 수 있었던 모든 매체를 통하여 치열한 반대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진정한 혁명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그 와중에 그는 당연하게도 지독한 가난과 생명의 위협에 시달렸고, 결국 거의 지구의 반대편까지 쫓겨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이야기. 아마도 영화로 만들고자 시나리오로 잘 정리하여 제작자의 책상에 정성껏 올려둔다고 해도, 두어 줄의 간단한 시놉만 보고도 그것은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지금의 이 때에 이런 것을 읽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다른 의미에서라면, 성공한 혁명가의 책, 아니 성공한 혁명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이보다는 훨씬 낭만적으로 보이는 다른 혁명가의 평전들 - 대표적으로 체 게바라 - 을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몰락한 혁명가의 생애, 아니 굳이 혁명이라는 말을 아예 없애버리고라도 몰락한, 몰락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흥미가 생긴다. 이건 무슨 이상 심리일까. 어쩌면 몰락해가고 있는 것들을 통해 나의 삶에 대한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으려는 당연한 심리일까. 



2.
몰락한 것은 한 러시아 혁명가의 삶 뿐만이 아니다. 매일 저녁 프라임시간에도 지금 몰락한 자들의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다. 그것도 비극물이 아니라 시트콤이다. 물론 그것은 김병욱의 새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이야기이다. 김병욱은 이번 시트콤의 키워드를 '몰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김병욱의 전작들에서도 몰락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였으며, 몰락한 캐릭터들도 가끔 등장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웃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몰락해 가고 있는 자들이 망가져 가는 틈에서 원래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김병욱의 이야기들은 꽤나 자주, 깔깔깔 웃음이 터지는 와중에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만들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서늘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러 묘한 웃음들을 끼워넣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것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가 그의 시트콤의 주인공들에게 마지막 순간에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죽음이 아닐까. 김병욱의 시트콤들은 이제 웃음은 뚝!, 이라는 식으로 마지막 순간에 시청자들에게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여러번 선물하였다. 그것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끊어버릴 때도 그랬고, 전체 이야기를 종결해 버릴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 덕분에 시트콤에서 상쾌하게 웃는 것으로 끝내고 싶었던 많은 시청자들에게 원망을 받기도 하였다. 하기는 김병욱의 시트콤을 보는 시청자들이 가장 자주 되묻던 질문은 "이거 시트콤 맞아?" 였으니까.

(글쎄. 앞의 심리와 연결될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김병욱의 시트콤에서 그런 서늘한 순간들을 더욱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김병욱의 시트콤들을 어떤 시트콤을 대하는 느낌보다는 그냥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많은 시청자들을 '김병욱 안티'로 돌아서게 만들었던 바로 전작의 꽤나 비극적인 결말도 내심 속으로는 상당히 괜찮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결말을 본 후 주위의 하이킥 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겉으로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결말이야!, 라고 했었지만, 집에 와서는 그 마지막 회를 몇번인가 돌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몰락'은 이번에는 전면에 나섰다. 집안의 가장인 안내상은 절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내몰렸으며, 그 덕분에 아들 종석은 모든 것을 걸었던 아이스하키를, 그리고 딸 수정은 미국 유학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몰락의 이야기는 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얹혀 사는 계상의 옆집에는 청년 실업의 상태로 선배 언니에게 얹혀 살고 있는 진희가 있으며, 이 집의 집주인인 지원에게도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뭔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아직 캐릭터의 중심을 잡는 초반임에도 길바닥에서 누워서 자고,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툭하면 나타나는 빚쟁이들을 피해 집 바닥 땅굴로 공습경보를 받고 대피하듯이 달려가기도 하고, 조폭들을 피해 쓰레기통에 숨기도 하고, 사기 당하여 학교 공금을 날리기도 하는 등, 그간 다른 김병욱표 시트콤들보다 훨씬 더한 고초를 겪고 있는 중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몰락은 어떤 사건들보다도 이 캐릭터 자체에 더욱 밀착되어 일종의 징후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안내상은 별 것 아닌 일에 집착하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비굴해지는 성격이 도드라지며, 백진희의 경우는 그의 삶의 피곤이 중첩된 몽유병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것을 기이하게 만드는 것은 나레이션의 등장이다. 이 나레이션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건을 설명하거나, 이들의 속마음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행동을 마치 인류학적 보고서를 써내려가듯이 차분하게 분석하고 설명한다(물론 이는 미래의 이적이 과거의 어떤 때를 회상하는 식이라는 이 시트콤의 거대한 액자와도 관련이 있다). 즉 이 시트콤은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이들이 보이는 어떤 '징후적인 신호'에 관심이 있다. 이 시트콤은 이 몰락한 시대의 징후를 잡아내 거대한 분석 보고서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 몰락한 세기의 징후를 어떤 식으로 포착해 낼 것인가. 그리고 한편으로 이들의 몰락은 마지막에 극적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전작처럼 결국 몰락의 종말인 죽음에 이르게 될까.

3.
그리고 여기 한국프로야구에도 몰락의 거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팀이 있다.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위업을 남긴 팀이자, 내 20년 가까이 되는 응원팀인 트윈스다.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고 하니, 뭔가 상당히 어려운 미션을 실패하는 것 같지만, 이 리그는 수십개의 팀 중에 달랑 몇 팀 포스트시즌 진출하는 그런 리그가 아니다. 8개 팀 중에 4팀 포스트시즌 나가서 뚝딱뚝딱 아장아장한 다음 우승팀 가려내는 그런 작은 리그다. 그런 트윈스를 보는 팬들의 심정은 뭐랄까, 9년 넘게 반등수 50% 안에 못들고 있는 그런 자식을 보고 있는 심정이랄까. 그런 트윈스는 올해는 더욱 기적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시즌 초중반까지 2-4위권을 유지했고, 초반 30승도 다른 어떤 팀보다 빨리 올렸음에도 결국 6위(그것도 공동이니 사실상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런 트윈스 상당수의 팬들이 바라는 것은 이번 야구 시즌이 빨리 끝나는 거였다. 망가져가고 있는 팀을 보면서 DTD니, 내려갈 팀이니 하는 비아냥을 더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들도 있었지만, 이번 시즌이 끝나면 무엇인가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늘상 스토브리그에 가장 바쁜 것은 트윈스팬들이었고, 가장 설렜던 것도 트윈스 팬들이기는 했다. 그러나 올해는 여러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마침 박감독의 사퇴 발표로 팬들은 올것이 왔다고 잔뜩 기대했다. 트윈스 홈페이지 게시판과 각종 야구 게시판에는 희망적인 꿈을 가득 담은 각종 카더라와 설들이 난무하였고, 팬들은 곧 거의 예정되어 있는 김연아 금메달을 생각하며 마지막 프리를 즐기자는 심정으로, 발표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올것이 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올 것이.

팬들이 분노하고, 그 분노를 넘어서, 허탈과 그에 따른 이탈을 예고하는 것은 단순히 원하지 않는 감독이 선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감독이 새로 부임하여, 나은 성적을 올리고,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킬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거의 기대하지 못하고, 혹은 기대한다고 해도 다른 면에서 분노하는 것은 일종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트윈스 팬들이라면, 몇년 동안 이어진 트윈스의 부진이 단순히 야구 실력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물론 야구 실력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야구실력이란 것이 결국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트윈스나 다른 어느 팀이나 기본 자원은 같다. 좁은 한국 고교야구가 그것이다). 그간 부임해왔던 정치적인 인사들과 아직 프런트 및 코치진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적인 인사들이 팀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조금씩 보아왔다. 그런 정치적인 인물들을 이번에 갈아엎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구단의 생각은 팬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학교로 따지자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관심없고 교장의 비위만 맞추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교사를 아이들 성적이 엄청 떨어져서 해고했다고 좋아했더니, 교장의 친인척이 와서 그 자리를 메우는 꼴이다. 옆 명문학교의 정말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교사들이 몇 명씩 놀고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팬들이 이번에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현재가 아니라, 우리 프로야구의 기원에 있는 것들이다. 군사독재의 선전용, 혹은 귀막음 도구로 재벌들의 결합으로 시작된 우리의 프로야구. 그 프로야구는 그들이 말한대로 결국 국민들과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한국프로야구에서 구단은 결국 그것을 가진 기업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팬들의 목소리라는 것이 현재 전혀 들어갈 틈이 없게 짜여진 이 구조에서, 팬들의 바람이란 결국 헛된 카더라일 뿐이라는 것. 내 소유물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데 당신들이 왜 나서는가, 아마도 트윈스 구단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팬들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우승을 열망하지만 구단도 그것을 열망하고 있을까. 어쩌면, 뭐 우승...하면은 좋기야 한데, 뭐 안해도 항상 야구장에는 관객들 그득하고, 어차피 적자인 상황에서 야구단이야 일종의 홍보물일 뿐이고...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그리고 현재 트윈스 홈페이지의 회원게시판은 감독 선임 이후 며칠 째 오류를 핑계로 작동되고 있지 않는 중이다(뭐 어쩌면 엘지의 기술력이 이 수준일지도..). 그런 상황에서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수막을 들고 야구장에 갔다가 폭도로 몰리거나, 지나친 팬심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뉴스에서 듣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미 길들여져 버린 우리들은 오늘도 여전히 멍하니 야구중계를 튼다. 

 
    

4.
자꾸 몰락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더니, 몰락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장정일 작가가 <빌린 책/산 책/ 버린 책 2>(이 책 역시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사왔다)에 쓴 "독서는 몰각과 자각, 이 양켠 모두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장정일 작가는 책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쾌락이란 어떻게 보면 모순되고, 서로 길항하는 두 개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전체에 몰각됨으로써 얻는 쾌락이 있고, 전체와의 일체감 속에서 자신을 명료하게 느끼는 쾌락이 있습니다. 마약이나 알코올에서 느끼는 쾌락이 전자라면, 신비주의에 귀일해서 얻는 쾌락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독서는 몰각과 자각, 이 양켠 모두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의 생각에 완전히 녹아들기도 하고, 그 속에서 반성적이 되거나 자각을 얻기도 합니다."

몰각과 자각,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함경록 감독의 영화 <숨>을 보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예를 들어 <도가니>와 같은 영화가 몰각에 가까운 것이라면, 이 영화 <숨>은 자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는 기본적으로 몰각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은 있다. 스크린과 합일하여 충만해지는 상태적인 쾌락이 몰각이라면, 아마도 영화보기는 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숨>을 보고 나오면서 그것을 떠올린 것은, 이 영화 <숨>이 <도가니>와 가까운 이야기를 상당히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에서는 결국 장애인 여주인공의 결혼과 가정이라는 꿈이 외부의 선을 표방한 사람들에 의해 깨어지게 된다. (<도가니>를 아직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간 <도가니>에 대한 여러 글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도가니>의 명확한 선악 구분과 달리, 이 영화의 선악 구분은 상당히 모호한 데가 있다. <도가니>가 분노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이 영화 <숨>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즉 분노가 일종의 쾌락과도 맞닿아 있다면, 그것은 몰각에 가까울 것이고, 생각과 반성은 일종의 자각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나는 <도가니> 보다 <숨>이 더 영화적으로 낫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람들을 분노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는 영화가 사람들을 충분히 분노하게 만든다면(즉 몰각을 시도한 영화가 그 몰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면), 그것만큼 충분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 <숨>은, <도가니>와 그로 인해 이어져가고 있는 광주 인화학교를 둘러싼 일련의 진행들을 보면서 조금은 우려되는 부분들, 조심해야할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것은 이 분노가 무엇을 위한,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분노는 나의 쾌락적인 만족감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광주인화학교 대책위에서 과도한 관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나, 학교 폐쇄를 우선으로 하고 있는 정부의 대책들을 보면 조금은 여러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리고 또 동시에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아동이나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은 더더욱 조금은 조심스럽고 최대한 피해자들을 보호해가면서 사건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도가니>의 열풍 속에서 그런 조심스러운 접근을 또 조금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했다.

아무튼 이 영화 <숨>은 굳이 <도가니>와 연결짓지 않아도 그 나름의 영화적 성취 속에서 또다른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윤리의 문제 역시 우리가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그 영화적 성취나 윤리의 문제는 혹시라도 쓰게 될 다음 포스트에. <도가니>를 본 사람에게 추천, 곧 내려갈 것 같으니 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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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읽을 인물과 평전 새창으로 보기
하이드 ㅣ 2009-01-02 ㅣ 공감(12)댓글 (4)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인물/평전 분야의 책은 의외로 많기도 하고, 영 적기도 하다.
읽어볼만한 인물/평전 책들을 이렇게 정리해 보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적고, 의외의 평전이 많아 반갑고 대견(?)하기도 한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랄까.

이왕지사 2009년 독서계획의 목표중 하나로 '인물과 평전'을 잡았으니, 알스님처럼 책블럭쌓기 놀이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물중에 하나이기도 한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 거장 시리즈'이다. 현재 19번째 <에드바르 뭉크>까지 나와 있다. 처음 나왔을때는 해냄의 '삶과 전설 평전세트' 와 을유의 시리즈 중 어느 전질을 살까 고민(만) 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현대 예술 거장 시리즈'가 훨씬 나의 구미에 맞는다.
 

 

 


 

 

 

 

 

 

 

 

이 중에서 앞으로 읽어 볼 책들은 <헬무트 뉴튼>, <트뤼포>, <히치콕>,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페기 구겐하임>,<에드바르 뭉크>, <빌리 홀리데이> 정도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자코메티>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읽어 보았는데, 두 권 다 두 작가에 대한 내 세계를 한단계 높여주는 책이였다. 흑백으로 통일된 표지, 시리즈 제목처럼 '현대 예술 거장' 에 대한 각 분야의 적절한 셀렉션, 가볍지 않은 내용들은 다른 사고 싶은 버전이 있어도, 일단 을유의 책부터 사게 만든다.
 

 

 

 
해냄의 '삶과 전설' 시리즈는 을유와 비슷한 볼륨으로 시작했으나, 을유에서 꾸준히 책을 내는 반면, 해냄은 영 지지부진하다.

 

 

 

 

 

 

 

 

딱히 시리즈의 통일성도 없고, 컨셉도 잘 모르겠고, 다른 출판사의 전기와 겹치는 전기도 많고 그렇다.
위의 책 중에서는 <마르코스>와 <사드>, <글로리아 스타이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클레오파트라> 정도를 읽고 싶다. 

실천문학사에서 나오는 역사인물찾기 시리즈도 판형은 맘에 안들지만, 오래되고 믿음직한 시리즈이다.

 

 

 

 

   
 

 

 

 

   

 

 

 

품절된 책은 제외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닌,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많다.
<닥터 노먼 베쑨>, <밥 딜런>, <케테 콜비츠>, <헬렌 니어링>,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 정도나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닥터 노먼 베쑨>과 <밥 딜런>을 제외하곤 안 땡기지만, 어쩌다보니 책장에 꽂혀 있다는 이유로 더 읽어야겠다. 생각 들었을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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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츠바이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기작가이다. 그의 생생하고 드라마틱하며, 현란한 필치는 인물에 대한 '애정'을 베이스로 하고 있으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교묘하게 균형을 맞추어 인물에 새로이 숨을 불어 넣는다.
그가 '읽은' 인물들에 대해 그 자체로 판단하기 보다는, 그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배경이나 다른 관점의 책들을 찾아보게 되니, 츠바이크의 책들은 나에게 한없이 유익하고, 재미있다.  나는 어쩌면 그로 인해 '인물/평전'분야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출간된 책들은 거의 다 읽었고, 이번에 나온 <메리 스튜어트>를 사 놓았는데, 올해는 맘먹고 몇권쯤은 재독할지도 모르겠다.

어릴적 읽던 위인전에는 '위대한' '위인'의 '어려운 중' '훌륭하고' '선한' 행적들에 대해서만 나왔더랬다.
나이가 들어 읽게 되는 인물/평전의 책들은 외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의 어두운 면들을 알게 한다.
함께 조명되는 빛과 어둠, 겉으로 보이는 외의 삶의 질곡과 그,혹은 그녀를 위대하게 만든 요인들을 짐작케 하는 이야기들에
나는 매력을 느낀다.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이던, 주관적이던간에 인물에 대한 팩트를 책 한권정도로 읽고 나면, 그/그녀가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해 다시 볼 수 있고, 의미를 새로이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으니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지금 생각나는대로만 찾아서 넣은 책들이다보니, 빈약한 리스트인데, 빠진 책들은 생각나는대로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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