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촉감
김한조 지음 / 새만화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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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노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결혼했고, 자식을 두었으며, 평생 큰 불행 없이 무난한 삶을 살았다. 아내는 무던하고, 자식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잘 산다. 중산층으로, 평범하면서 안온한 가족을 꾸리며 평생 살았던 노인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잊었던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독자는 노인의 독백을 따라 과거의 시간으로 따라간다.

노인의 삶은 회한과 후회로 가득하고, 자기 연민의 시각이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 죄책감과 죄의식을 마음 깊이 감춘 채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노인의 과거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과 이기적 태도로 일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노인과 동거했던 여인 두 사람이 주인공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노인의 시각과 입장만 드러난다. 따라서 독자는 노인의 주관적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노인의 심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회환과 후회, 죄책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작품을 노인의 시선에서 멀어져, 객관의 시선으로 보면, 노인은 극도로 이기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노인(남자)이 청년이었을 때, 대학을 졸업할 무렵, 어떤 여인과 동거했다. 동거는 몇 년 이어졌는데, 집안에는 여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애당초 결혼할 마음이 없었던 남자는 혼인하지 않고 부부처럼 살아간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겠지만,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남자는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막 세상에 뛰어들어 자기 삶을 뿌리내리기 시작했지만, 동거하던 여성은 아마도 많이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녀의 집안도 대단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남자는 결혼하기에 여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남자의 무의식에 오만함과 차별 의식이 자리 잡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남성 일반처럼,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 관점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자가 고향으로 며칠 떠나고, 남자가 짐을 챙기러 동거하던 집을 찾았을 때, 여전히 여자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있지만, 그건 여자를 깊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여자를 착취하며 누렸던 시간을 잃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라는 건 깨닫지 못한다. 남자는 여자와 동거하면서 마치 가정부를 부리는 듯한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여자는 헌신적으로 '아내'처럼 행동했겠지만, 남자에게는 여자가 '아내'가 아니라, 집안을 보살피고, 밥과 빨래를 해주고, 심지어 성 서비스까지 해주는 조건 없는 하녀를 둔 것으로 인식했을 걸로 보인다. 물론 남자가 여자를 사랑했을 걸로 보인다. 다만 그 사랑의 무게와 깊이가 남자의 이기심을 극복할 정도로 진지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남자가 청년일 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사람은 20대에서 불과 20%도 안 되는 특권층에 속했다. 이 말은, 남자의 집안이 남자를 대학에 보낼 정도로 풍족한 집이었으며, 그것도 서울로 유학을 보낼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남자가 동거하던 여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나오지 않지만, 동등한 처지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남자는 동거하던 여자를 붙잡지 못했다고 후회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먼저 끝낸 사람은 의외로 여자였다. 남자가 여자와의 관계를 숨기고, 갈등하고,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여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남자는 비겁했고, 끝까지 망설였으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여자가 보인 단호한 태도는 여자 자신보다 남자를 위한 태도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남자를 배려하고, 용서한 건 여자였다.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여자의 시각으로 남자를 기억하는 내용이 나온다면 어떨까. 여자는 남자보다 독립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남자의 삶이 더 없이 무난하고 평범해서 그의 유일한 추억이자 회한이 대학 졸업 무렵 만나 동거한 여자와의 추억이 전부였다면, 남자와 헤어진 다음부터 일어난 여자의 삶은 최소한 남자보다 훨씬 드라마틱 할 건 분명하다.
다른 면에서 보면, 노인(남자)의 가족은 노인의 삶에서 대상화, 소외된다. 남자가 여자와 헤어진 다음,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건 그의 회상으로 드러난다. 결혼을 했지만 그건 아마도 중매 결혼이었을 확률이 높고, 가부장 사회에서 남자는 직장인으로 평생 살았을 거고, 자식을 돌보고, 키우는 건 남자의 아내가 맡았을 거다. 아들과 딸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아버지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걸로 보인다.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어 의식이 흐릿한 탓도 있지만, 남자가 말하듯, 동거하던 여자와의 결별 이후의 삶은 마치 껍데기만 살아온 듯한 느낌이다. 사람의 자기정체성, 존재감은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을 통해 확인받는데, 남자는 가족을 통해 그런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걸 가족의 문제나 가족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는 건, 남자의 삶이 가족과 일체감을 이룬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평균적으로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로 살았지만, 그가 살았던 가부장 사회,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소외되었고, 남자는 자신이 주인공처럼 살았던 사회에서 자기가 소외되었다는 사실 조차 모른 채 살았다. 남자는 아내도, 자식도, 자기 자신도 진심으로, 온몸으로 사랑하며 살지 못했다. 그건 어떤 면에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비슷하다. 뫼르소의 삶은 건조하다. 감정이 빠져나간 삭막한 이성만이 그의 내면을 채우고, 사람과 세상은 관계가 아니라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남자가 피, 눈물, 땀, 슬픔, 기쁨, 행복, 절망과 같은 오욕칠정의 감정이 거세되고, 감정이 '대상'으로 사물화 한 원인은 여자와 헤어지면서 자기의 '진짜' 감정을 스스로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 꿈, 희망을 스스로 살해했다. 그런 점에서 남자와 동거했던 여성은 남자의 '꿈', '희망', '행복'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현현이다.

남자는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웠기에, 현재를 포기하고 안정된 현실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진정으로 바라던 꿈, 희망, 행복은 거세되고, 그의 내면은 삭막한 사막처럼 죽어간다. 남자는 이제 '진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결별했던 여자의 진짜 모습을 알아챈다. 그건 바로 자신의 꿈, 희망, 행복이었고, 그건 다시는 볼 수 없는 저 먼 과거의 한 줄기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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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동 사람들
박건웅 지음 / 우리나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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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작가의 창작 그래픽노블. 한국현대사를 꾸준히 다루고 있는 작가의 역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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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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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자

이 작품은 앞서 출간한 '동조자'와 짝을 이룬다. 주인공 '나(보 얀, nothing)'는 1975년 남베트남 패망과 함께 자신의 상관인 대령과 함께 미국으로 온다.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군인이자 공산당 당원이며 미국정보국 CIA의 첩자로 활동하던 '나'는 미국에서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 태국을 거쳐 베트남으로 들어오다 체포당한다.
'동조자'는 '나'의 진술서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형식이 진술서를 쓴 것처럼 되어 있어, 독자는 읽기가 몹시 곤혹스럽다. 이 '진술서형 소설'은 주인공 '나'가 포로수용소에 갇혀 1년 동안 써내려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하는 일 전혀 없이 하루 세 끼 먹고 글만 쓴다 해도 1년에 A4 용지로 700쪽 짜리 책을 쓰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자신이 겪었던 지난 몇 년 동안의 일을 있는 그대로(?) 시간의 순서대로 써내려 갔기 때문에 그나마 이만한 분량을 채울 수 있다고 보는데, 소설의 형식으로 보면, '동조자'나 '헌신자'는 독자에게 매우 불편한 작품이다.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보트 피플'로 미국에 와서 교수가 되었다. 그의 집안은 부르주아 출신으로, 고향에서나 미국에서나 부유한 삶을 살았기에 '난민'의 고난을 겪지도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다.
두 소설의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을 가진 프랑스-베트남 혼혈이라는 배경과, 주인공 '나'가 북베트남 공산당원으로, 공산주의자이면서 남베트남의 공안국에 침투해 간첩으로 활동하는 한편, 미국 정보기관 CIA의 첩자로도 활동하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나오는 것도 작가의 정체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소설 형식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특이한 서술 방식은 작가가 전형적인 '지식인'이라는 걸 잘 드러낸다. 두 작품 모두 수많은 비유와 인용으로 가득한데, 작가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소설에 녹였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문장을 끊지 않고, 길게 써 내려가는데, 그건 숨이 차도록 읽어야 하는 독자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다. 비판적으로 보면, 작가는 현학적으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끼워 넣은 것처럼 보이는데, 문장의 길이보다는 서술의 명료함에서 더 불편을 느끼는 독자가 많을 걸로 본다.
두 작품 모두 작가는 서술을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별명으로 나오고, 은유와 비유를 써서 묘사한다. 번역본(한글)에서는 번역자가 각주를 만들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원본(영어)에서도 작가 각주가 있는지 궁금하다. 읽으면서, 번역자가 만든 각주의 내용은 거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각주가 없었어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는데, 각주의 내용은 주로 역사적 사건과 문학, 철학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헌신자'에서는 앞선 작품 '동조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비교적 친절하게 설명한다. '동조자'를 읽지 않고 '헌신자'를 먼저 읽는 독자는 주인공 '나'가 왜 프랑스로 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동조자'를 읽은 독자 가운데서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독자는 '헌신자'에서 '동조자'의 내용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 '헌신자'의 앞부분에 '동조자'의 줄거리에 가까운 내용이 나오는데, 이건 '동조자'를 읽은 독자나 읽지 못한 독자 모두에게 주인공 '나'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가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동조자'는 주인공 '나'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하고픈 말은,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 제국주의 미국의 침략과 베트남 남북의 내전, 부패한 남베트남의 패망, 미국으로 건너간 베트남 사람들의 삶, 이방인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처참한 심정 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 공산당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는 '나'와 베트남 공안국을 지휘했던 대령이 미국 베트남 사회에도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판단해 두 명을 살해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주인공 '나'가 태국을 거쳐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건 아마 자신이 공산당원이라는 정체가 탄로날 수 있다는 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베트남에 들어왔지만, 포로수용소에서 1년을 갇혀 살며 '자술서'를 쓰는 과정이 '동조자'였다면, 포로수용소에서 겨우 빠져나와 다시 프랑스로 와서 벌어지는 일이 '헌신자'의 내용이다. '헌신자'에서 '나'는 미국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한다.
'나'는 처음에 평범한 일자리(가게, 식당 등)를 얻어 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을 취급하게 되고, 파리 외곽에서 마약 사업을 하는 베트남 범죄조직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다른 범죄조직과 총격적을 벌이고, '나'도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운 좋게 살아남는다.

'헌신자'에서 '나'가 말하는 내용은 프랑스에서 외국인 이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말하는 것인데, 과거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프랑스와 베트남의 관계, 프랑스가 제국주의였을 때, 알제르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남미 일대를 식민지로 만들어 그 나라의 국민과 자원을 착취, 수탈하던 과거의 역사를 비판하는 내용부터,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벌어진 여러 논쟁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많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토론까지, 작가는 주인공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에서 프랑스 사회, 역사를 비판하는 장치를 끝없이 인용한다.
이건 '동조자'에서 미국 사회를 끝없이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미국 작가의 작품, 미국 역사, 미국의 이민 정책과 이민자들의 삶, 미국에 번지는 마약과 마약을 다루는 범죄조직, 마약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범죄들을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은, 베트남 역사를 중심에 두고, 베트남을 침략했던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비판이다. 다만 작가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남베트남, 북베트남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고, 존중하며 베트남의 역사가 제국주의 국가에게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주인공 '나'를 통해 미국에서 한동안 살아가는 '나'가 본 미국의 진짜 모습과 프랑스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제국주의 국가의 정체와 그 나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힘없는 베트남 사람들, 또는 고향 베트남에서 부르주아로 살았던 베트남 사람들이 제국주의 국가에서 백인들의 하인으로 전락해 살아가는 비참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나'에게는 두 명의 의형제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만'이, 프랑스에서는 '본'이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세 사람은 의형제처럼 생각하지만, '만'은 베트남 공산당 정치위원으로 '나'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나'의 사상을 검열했던 사람이고, '본'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공산당원, 공산주의자를 없애는 걸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었다. '나'는 공산주의자이긴 해도 철저한 사상을 가진 건 아니며, 남베트남 공안국에 근무하면서 동시에 미국정보부 CIA의 첩자노릇을 하는 이중 간첩으로 살아가는 회색인, 경계인이다.
극좌(만)와 극우(본) 사이에서 '나'는 이념이라는게 얼마나 쓸모없는가를 절실히 깨닫는다. '나'는 프랑스에 와서 삶의 지향을 잃는다. 보고해야 할 상관도 없고, 작전도 없으며, 평범한 개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게 쉽지 않다. 결국 그는 돈을 벌려고 마약 유통에 뛰어들고,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나'는 선진국 프랑스의 정체, 제국주의로 약한 국가를 착취한 프랑스가 오늘날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파리의 뒷골목, 변두리에는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아랍인들이 '기생'한다. 과거 제국주의 프랑스가 착취했던 나라의 인민들이 이제는 제국주의의 수도에서 프랑스를 좀먹기 시작한 것이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 이주민을 이등 국민 취급하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 프랑스 주류에 들 수 없는 이주민들이 마약을 비롯한 온갖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불평등한 사회 문제를 드러낸다.

'동조자'는 '진술서'라는 형식을 띄어 문장의 빡빡함과 너무 많은 정보를 이해한다고 해도, '헌신자'도 '동조자'와 똑같은 형식을 띄고 있어 독자는 읽어내기가 몹시 어렵다. 소설의 내용이 난해한 게 아니라 형식이 난해한 건 독자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를테면 카프카의 소설은 내용이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카프카의 소설은 철학적으로 읽히기 때문에, 독자가 카프카의 소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엣 타인 응우옌의 소설은 철학적 난해함을 가진 작품일까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동조자', '헌신자'는 많은 정보가 들어 있긴 해도 작품이 철학적이진 않다. 다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형식과 내용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을 인정받았고, 미국에서 많은 상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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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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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독자는 곧바로 당황한다. 줄바꿈 없이 무작정 이어지는 길고 긴 문장은 독자의 시각과 심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이 형식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드는데, 소설의 뒷부분에 가서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고, 작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680페이지 소설에 여백과 단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니, 일반 소설로는 거의 1천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으로 보인다. 작가(비엣 타인 응우옌)는 자신이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1975년 베트남 패망(북베트남의 남북 통일)부터 주인공인 '나'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포로수용소에 갇히면서 1년 동안 쓴 자술서의 형태로 소설을 완성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주인공 '나'의 자술서이며, '나'가 살아온 과정을 기술한 내용이다. 이때 독자는 '나'가 기술한 내용을 읽고 '나'에 관해 알아가지만, '나'의 진짜 모습은 모른다. 그건 자술서에서 '나'가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자술서를 믿지 못하는 포로수용소장은 '나'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한다. '나'가 쓴 자술서를 읽어보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매우 솔직하게 남베트남군이 패퇴하는 과정과 미국대사관을 통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오는 과정,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두 기술한다.
'나'는 남베트남군 장군의 부관으로 대위이며, 영어를 잘 한다. 그는 프랑스-베트남 혼혈로, 그의 출생은 매우 비극적인 사실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공산주의자로 남베트남 군부에 침투한 간첩이다. 그는 남베트남 군부의 정보를 비롯해 내부 정보를 수집한 다음, 점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는 동료 첩자에게 정보를 넘기고 있었다.
남베트남이 붕괴하고, '나'가 모시던 장군 일가와 함께 미국으로 와서도 여전히 민간인이 된 장군의 운전사 노릇을 하며 지내는데, 장군은 미국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을 규합해 '반베트남 전선'을 만들어 태국을 통해 사회주의 베트남으로 쳐들어가 내전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프랑스에 있는 '당고모'에게 편지로 보내는데, 장군은 자신의 부관이자 비서인 '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정 또는 간첩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대령과 기자를 살해하는데 '나'를 보낸다.

'나'는 미국에서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당고모'는 계속 미국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다. 조직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죽고, '나'는 간신히 살아남는다.
'나'를 관리하는 조직이 '나'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오지 말라고 명령했는데도 궂이 베트남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얼까? 자신이 '고정간첩'이라는 정체가 탄로나기 직전이어서는 아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공산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려서였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보면 '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니면, 베트남 공산주의가 다른 모든 공산주의처럼 너무 경직되고, 비인간적이라서 그럴 수 있다. 공산주의는 나라에 따라 다른 형태를 보이는데, 공통점은 독재와 공포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베트남 공산당의 상징인 '호치민'의 이미지는 스탈린이나 모택동과는 다르게 '호아저씨'로 친근한 이미지인데, 그렇더라도, 공산주의 조직의 경직성은 여전하다.
주인공 '나'는 베트남 공산당원으로 공산주의자이면서, 미국 정보기관 CIA를 위해 일하는 첩자로 의심받는다. '나'가 전투 중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어 1년 동안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자술서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와 형제같은 친구인 '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가 누군지 모르고 보고했던 '당고모'의 정체가 바로 형제같은 친구 '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배신감을 갖지만, '만'은 포로수용소장이 인정해야만 풀려날 수 있다고 말한다.
포로수용소장의 입장에서는, 포로들 대부분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간들을 교화해야 하는 임무를 띄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 미국의 간첩이 있는가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의 자술서를 통해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그가 베트남에서 어떤 일을 했고, 그가 조국 베트남에게 도움이 될 지, 해로울 지를 판단해야 한다.
주인공 '나'가 아무리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걸 순순히 믿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꽤 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위원 '만'이 친구라는 게 밝혀졌음에도, 수용소장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1971년생으로 그가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베트남이 패망했지만, 베트남은 오랜 내전을 끝내고 마침내 통일했다. 한국전쟁 때, 북쪽에 살던 사람 가운데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온 것과 같은 성격이다.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베트남을 떠나 다른 나라로 도망했는데, 미국으로 간 베트남 사람들은 비교적 좋은 환경에 자리 잡은 것이고, 이들의 성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을 때는 군산복합체 즉 자본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미국 청년들 5만여 명이 사망하고, 그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PTSD를 겪고, 반전 시위, 마약의 확산 등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문화 전반을 뒤흔들었다.
비엣 타인 응우옌은 미국에서 성장하며, 소수 인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를 겪는다. 백인, 흑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아시아인은 크고 작은 차별을 당하며 산다. 더구나 베트남인은 베트남 내전에서 패한 쪽에 있다 쫓겨났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잊기 어렵다.
작가는 이런 자괴감을 주인공 '나'를 통해 경계인으로 표현한다. 공산주의자이면서 남베트남 군인으로 생활하고, 간첩이면서, 제국주의 미국 정보국의 첩자로 활동하는 인간이라면, 그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 '나'도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게 되는, 역사 속의 인간이란 자기 의지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이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데, 몇 가지 흥미로운 관점이 보인다. 이 소설이 2016년, 퓰리쳐상을 받는데, 비엣 타인 응우옌의 첫 소설이라는 점에서 놀랍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로 만들고 싶은 요소가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주인공 '나'가 갖고 있는 경계인으로의 위치가 박찬욱 감독의 관심을 끌었을 걸로 보인다. 동시에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 '나'는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베트남 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나'를 통해 남베트남의 부패와 비리, 탐욕의 인간들을 보여주고, 북베트남의 이념에 허덕이는 인간, 경직된 체제를 보여주면서, 인간 고유의 자유에 관해 질문하는 내용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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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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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독자는 곧바로 당황한다. 줄바꿈 없이 무작정 이어지는 길고 긴 문장은 독자의 시각과 심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이 형식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드는데, 소설의 뒷부분에 가서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고, 작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680페이지 소설에 여백과 단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니, 일반 소설로는 거의 1천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으로 보인다. 작가(비엣 타인 응우옌)는 자신이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1975년 베트남 패망(북베트남의 남북 통일)부터 주인공인 '나'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포로수용소에 갇히면서 1년 동안 쓴 자술서의 형태로 소설을 완성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주인공 '나'의 자술서이며, '나'가 살아온 과정을 기술한 내용이다. 이때 독자는 '나'가 기술한 내용을 읽고 '나'에 관해 알아가지만, '나'의 진짜 모습은 모른다. 그건 자술서에서 '나'가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자술서를 믿지 못하는 포로수용소장은 '나'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한다. '나'가 쓴 자술서를 읽어보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매우 솔직하게 남베트남군이 패퇴하는 과정과 미국대사관을 통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오는 과정,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두 기술한다.
'나'는 남베트남군 장군의 부관으로 대위이며, 영어를 잘 한다. 그는 프랑스-베트남 혼혈로, 그의 출생은 매우 비극적인 사실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공산주의자로 남베트남 군부에 침투한 간첩이다. 그는 남베트남 군부의 정보를 비롯해 내부 정보를 수집한 다음, 점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는 동료 첩자에게 정보를 넘기고 있었다.
남베트남이 붕괴하고, '나'가 모시던 장군 일가와 함께 미국으로 와서도 여전히 민간인이 된 장군의 운전사 노릇을 하며 지내는데, 장군은 미국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을 규합해 '반베트남 전선'을 만들어 태국을 통해 사회주의 베트남으로 쳐들어가 내전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프랑스에 있는 '당고모'에게 편지로 보내는데, 장군은 자신의 부관이자 비서인 '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정 또는 간첩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대령과 기자를 살해하는데 '나'를 보낸다.

'나'는 미국에서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당고모'는 계속 미국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다. 조직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죽고, '나'는 간신히 살아남는다.
'나'를 관리하는 조직이 '나'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오지 말라고 명령했는데도 궂이 베트남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얼까? 자신이 '고정간첩'이라는 정체가 탄로나기 직전이어서는 아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공산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려서였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보면 '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니면, 베트남 공산주의가 다른 모든 공산주의처럼 너무 경직되고, 비인간적이라서 그럴 수 있다. 공산주의는 나라에 따라 다른 형태를 보이는데, 공통점은 독재와 공포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베트남 공산당의 상징인 '호치민'의 이미지는 스탈린이나 모택동과는 다르게 '호아저씨'로 친근한 이미지인데, 그렇더라도, 공산주의 조직의 경직성은 여전하다.
주인공 '나'는 베트남 공산당원으로 공산주의자이면서, 미국 정보기관 CIA를 위해 일하는 첩자로 의심받는다. '나'가 전투 중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어 1년 동안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자술서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와 형제같은 친구인 '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가 누군지 모르고 보고했던 '당고모'의 정체가 바로 형제같은 친구 '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배신감을 갖지만, '만'은 포로수용소장이 인정해야만 풀려날 수 있다고 말한다.
포로수용소장의 입장에서는, 포로들 대부분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간들을 교화해야 하는 임무를 띄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 미국의 간첩이 있는가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의 자술서를 통해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그가 베트남에서 어떤 일을 했고, 그가 조국 베트남에게 도움이 될 지, 해로울 지를 판단해야 한다.
주인공 '나'가 아무리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걸 순순히 믿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꽤 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위원 '만'이 친구라는 게 밝혀졌음에도, 수용소장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1971년생으로 그가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베트남이 패망했지만, 베트남은 오랜 내전을 끝내고 마침내 통일했다. 한국전쟁 때, 북쪽에 살던 사람 가운데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온 것과 같은 성격이다.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베트남을 떠나 다른 나라로 도망했는데, 미국으로 간 베트남 사람들은 비교적 좋은 환경에 자리 잡은 것이고, 이들의 성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을 때는 군산복합체 즉 자본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미국 청년들 5만여 명이 사망하고, 그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PTSD를 겪고, 반전 시위, 마약의 확산 등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문화 전반을 뒤흔들었다.
비엣 타인 응우옌은 미국에서 성장하며, 소수 인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를 겪는다. 백인, 흑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아시아인은 크고 작은 차별을 당하며 산다. 더구나 베트남인은 베트남 내전에서 패한 쪽에 있다 쫓겨났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잊기 어렵다.
작가는 이런 자괴감을 주인공 '나'를 통해 경계인으로 표현한다. 공산주의자이면서 남베트남 군인으로 생활하고, 간첩이면서, 제국주의 미국 정보국의 첩자로 활동하는 인간이라면, 그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 '나'도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게 되는, 역사 속의 인간이란 자기 의지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이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데, 몇 가지 흥미로운 관점이 보인다. 이 소설이 2016년, 퓰리쳐상을 받는데, 비엣 타인 응우옌의 첫 소설이라는 점에서 놀랍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로 만들고 싶은 요소가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주인공 '나'가 갖고 있는 경계인으로의 위치가 박찬욱 감독의 관심을 끌었을 걸로 보인다. 동시에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 '나'는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베트남 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나'를 통해 남베트남의 부패와 비리, 탐욕의 인간들을 보여주고, 북베트남의 이념에 허덕이는 인간, 경직된 체제를 보여주면서, 인간 고유의 자유에 관해 질문하는 내용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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