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오전 11시 55분, 마드리드   

  이 집에서 세 번째 샤워를 했다. 이제는 욕실에 가기 전에 화장품을 어떻게 정리해 놓을지, 뭘 들고 가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씻고 나올지 패턴이 다 정해졌다. 앞으로 세 번, 더 씻을 일이 남았다.  

  감기가 악화되었다는 P의 목소리에 일어나 넓데데한 그릇에 시리얼을 잔뜩 먹고 길을 나섰다. 동행이 있는 오늘, 레가즈피 역은 어제 한 바퀴 헤매던 곳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지하철을 탔을 P가 민망해질 만큼 사진을 찍어대면서 동행이 있음을 과시했다.
  그 손이 이끄는 대로 일요일 아침에 열린다는 라스트로 시장에 갔다. 런던에서 쭈비와 가 본 시장이란 먹는 것, 먹는 것, 그리고 먹는 것으로 끝나는 식도락 여정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느낌일까 생각했는데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일단 거기에서는 먹을 것을 팔지 않았을 뿐더러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대열을 따라 휩쓸리듯 걸으면 되었다. 소란스럽게 외쳐대는 스페인어와 길을 메운 관광객들의 외국어가 섞이고 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이 뒤섞여서 아주 혼잡했다.
  온통 스트라이프 무늬 옷들만 걸려 있는 집, 플라멩코 부채 집, 질은 나쁘지만 색상이 정말 다양한 가죽 가방을 파는 집, 수많은 스카프 집들, 계속 이어지는 비슷한 노점들을 구경하는 와중에 P는 귀국 준비를 했다. 기념품을 사는 P의 옆에 서 있으면서도 곧 그가 자기 ‘집’에 돌아갈 거란 것이 믿기지 않았다. (최근 여행을 다녀온 뒤 페이스북에 ‘집 도착!’이라고 남겼더니 누군가 한국에 돌아간 거냐고 물어왔다. 어느새 내겐 런던이 집이 되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는데, 이럴 때 보면 또 참 잠시 머무는 곳 같기도 하고.) 가장 먼저 서울의 형체 없는 ‘집’이 떠올랐다. 인천 공항에 내리는 순간과 서울의 나를 키운 8할인 학교의 모습과 얼굴 없는 친구들의 모습이 이어지고 곧 아주 구체적인 우리 집, 부산 집의 모습이 그려졌다.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장 끝자락에 웬 물고기 프린트 티셔츠 집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흰 티셔츠에 물고기 캐릭터가 그려진 익살스러운 티셔츠들을 파는 곳이었는데 뭐가 그리 로맨틱한 바람이 불었는지 N 것까지 커플로 사버렸다. 커플로 뭐 다른 것도 아니고 티셔츠라니, 그런 오그라드는 짓은 여행 와서 한껏 기분이 업 되었을 때 해 줘야 제 맛이라며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마쳤다. 그래, 그래도 그 옷을 제값 주고 샀다는 건 참 나다운 일이다.  

  마요르 광장을 지나, 초콜라테리아 산 히네스San Gines에서 츄러스를 먹었다. 비가 온다던 하늘은 파랗게 맑기만 했고, 햇살이 비치니 별로 춥지도 않아서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워낙 게눈 감추듯이 금방 먹기도 했지만 12월에 밖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몸이 굳지 않을 수 있다니 감격했다. 게다가 푸른 하늘! 런던은 드높은 악명만큼 비가 많이 오진 않지만 확실히 날이 많이 흐린 도시다. 깔끔하게 푸른 빛을 내는 하늘을 바라볼 때, 햇살이 눈을 부실 때 행복에 겨운 강아지같이 헥헥거리게 되는 나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다. 평소에 런던이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해 앞에서는 자동적으로 무력하리만치 녹아버린다. 태양이 녹인 것 같은 초콜렛이다, 생각하기도 전에 츄러스는 종적을 감추었다.
  시원하게 뚫린 그란 비아는 햇살과 잘 어울렸다. P가 ‘마드리드에 이런 곳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간 카페 씨르코Circo에서는 피에스타가 한창이었다. 말하자면 파티였지만 P는 좀처럼 피에스타를 대신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축제라고 말해버렸다. 그 작은 카페 안에서 축제가 한창이었다. 흠. 영어도 우리말도 퇴보하고 있다는 그는 아쉽지만 그래도 마드리드에 이런 곳도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재차 강조했고, 우리는 스타일리쉬한 카페 문을 나서야 했다.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들른 다른 곳은 르 뺑 코티디엔 Le Pain Quotidien이었다. 런던인지 파리인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마드리드에서야 가 보게 되었다. 프랑스 이름의 빵집이라면 괜히 신뢰감부터 생기는 마음에 빵을 먹을 것도 아니었지만 신이 나서 들어갔다. 널찍한 홀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귤이 함께 나오는 레모네이드와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식사 메뉴를 하나씩 시키고 앉아 점심을 먹는 분위기였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다 맛있어 보이던지…. P와 나는 꼭 다시 와서 식사를 하자는 약속을 했고, 나는 이 순간 세고비아에 갈 생각을 접었다.
  에스파냐 광장의 큰 분수와 수제품 시장을 지나, 어딘가 어설프게 손질된 사바티니 정원을 지나 왕궁 앞에 있는 씨엔 몬타디토스 100 Montaditos에 들어갔다. 마드리드에만 지점이 있다는 이 가게에서는 몬타디토스라는 짧달막한 샌드위치를 팔았다. 여러 맛을 먹어보려고 아까까지 먹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일곱 개나 주문했다. 주문한 다음 음식을 찾으러 갈 때 ‘놈브레?’라는 질문을 알아듣고 내 이름을 똑똑히 말한 게 퍽 자랑스러웠다. 클라라Clara라고 불리는 레몬주스 탄 맥주 한 잔도 곁들였는데, 내가 왜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속이 불편했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빵은 맥주랑 먹는 거였다.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며 어젯밤 슈퍼에서 본 배 나온 아저씨를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간만에 아주 늦은 시간에 맞이하는 해질녘이었다. P의 외침에 왕궁 너머의 해지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기분 좋은 하늘을 보여주던 날이면 런던의 해질녘도 이렇게 마법 같은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구름이 이루어내는 분홍과 주홍빛이 옅은 푸름 속으로 겹겹이 스미는 하늘은 마치 이곳의 단풍처럼 은은하고 사랑스러우리만치 아름답다. 알무데나 성당의 청색 벽에도 하늘빛이 드리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P가 거의 한 해를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그 이름을 몰랐다는 비야 광장을 지나고, 산 미구엘 시장을 지나고, 여전히 꼬맹이를 무등 태운 아버지들이 있는 마요르 광장을 지나고, 쏟아질 것 같은 노란 조명이 가득한 마요르 길을 지나자 푸에르타 델 솔의 큰 트리가 보였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서 켜진 조명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색깔로 조명을 장식한 이 도시의 센스라는 게 그 순간에는 참 우스웠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마요르 광장에 모인 잡스러운 거리예술가들에게 꼭 어울리는 색깔이었던 듯도 하다. 그 잡스러움 속에 경쾌함과 어딘지 모를 정겨움이 있었던 듯 한 것이다. 단정하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숨 쉴 공간을 주는, 그 만큼의 적당한 촌스러움은 지금까지 내가 느낀 마드리드의 모습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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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비 2010-12-22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Le Pain Quotidien 세인트 판크라스에 있어! ㅋㅋㅋ 우어우어 맛있는 거 많이 먹었고나 나도 먹고싶다아아아 ㅠ.ㅠ.ㅠ
확실히 그곳에서 오래 지낸 친구가 있으니 좋구나 ! :) 크크 나도 마드리드 꼭 가봐야지 !

책읽는나무 2012-02-0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지내시나? 요즘 그때 그시절 사람들의 서재를 드나들고 있어요.^^
명란님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신건가요?
여행도 다니시고...아님 유학이라도 가신건가요?
여튼 부럽습니다.^^

명란님의 변해가는 모습들이 왜 자꾸 내가 키워낸 것만 같은겐지??
님을 보면 내가 더 뿌듯하고 행복하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가끔씩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페이퍼 한 장씩 쓰시구요.

明卵 2012-05-18 14: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읽는나무님! ^^
2월에 남겨주신 댓글을 이제서야 확인하고 답을 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ㅅ;♡
이번 학기에 '다문화사회와 미디어'라는 수업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배우는데
제가 중학생 때 어떤 책을 읽었던가, 확인해보려고 들어왔다가 반가운 댓글을 봤네요.
저는 지금 5학년 1학기(...) 째 대학을 다니고 있답니다.
교환학생으로 런던에 1년 동안 있었는데 그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런던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지내는 한 해동안
제 전공과는 상관없는 과목들을 이것저것 들어보느라 전공 이수 학점을 아직 다 못 채워서 5학년 2학기까지 다닐 예정입니다 ^^; 크흑...

이곳에는 왠지 좋은 소식, 멋진 글로만 찾아와야 할 것 같아서 더 찾아오기가 힘들어졌지만
늘 뿌리같고 그리운 공간이에요.
책읽는나무님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 총총 :)
 

12월 19일 오전 3시 15분, 마드리드 

   마드리드의 P 집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거실 한 켠 시트를 씌운 소파가 내 자리다. P를 비롯한 다섯 여자가 사는 집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이 집에 내 자리, 랄 것이 생긴다. 어젯밤 비행기 연착으로 지친 상태에서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내가 잘 곳을 봤을 때는 그렇게 초라하고 불편해 보일 수가 없었는데 하룻밤 곤히 자고 나니 여기도 썩 편안하다. 마음 뉘이기에는 온전한 내 것이 제일 좋다. 

  비행기를 혼자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덩달아 공항에 가는 기차도 생경한 것이 되어버렸다. 기차라면 줄기차게 혼자 탔는데도 말이다. 내가 프린트한 표가 맞는 표인지, 내가 기다리는 곳이 맞는 곳인지부터 시작해서 아주 사소한 것들이 걱정되고 불안했다. 매번 기차 시간표나 내 티켓, 여권 같은 권위 있는 어떤 것들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고, 또 다시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두 시 사십 분 기차. 지는 햇살이 반대편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와 캐리어 손잡이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지정석이 없는 기차에서 나는 네 자리를 차지했다. 의자 네 개만큼의 공간이 내 몸뚱이와 캐리어 하나로 모자란 듯 찼다. 내 공간 안에서 나는 아까까지 시간표를 몇 번이고 확인한 적도 없거니와 이런 여행은 아주 이골이 났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연출했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서로의 공간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노래를 듣다 졸다, 문자를 하다 졸다 그렇게 체크인 마감 한 시간 전에 루턴 공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공항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버스를 타야 했다. 그 순간 간밤에 샤워하고 잔 줄 알고 아침 알람에도 잠을 더 청했던 내 자신과, 늦게 끝난 수업과 점심으로 내가 고른 길쭉한 바게트 샌드위치까지 다 원망스러웠다. 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삼십 분 전에 도착한다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이제는 더 이상 무심한 자신을 가장할 수 없어 초행길에 오른 수줍은 동양 여자—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때의 심정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 이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동양 여자라는 카테고리에 꽤나 자주 넣곤 한다—로 컨셉을 바꿨다. 물론 다닥다닥 붙어 선 버스 안의 사람들도 서로의 공간에, 혹은 이 경우 그냥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여기 와서 P에게 듣고 안 사실인데 나는 짐이 하나라 체크인 마감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여행에서 유로스타를 놓친 사람은 한번쯤 이렇게 안절부절 일찍 도착하는 게 예의인 것 같다.) 

  순조롭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라운지에 들어섰다. 제일 앞의 전광판은 고장이었다. 갑작스레 런던에 눈이 와서 혹시나 결항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터라 이륙 시간표를 지금 당장 보고 싶었다. 다음 전광판을 찾았다. 네 시 오십오 분 마드리드. 그리고 옆에 빨간 줄이 주욱 그어졌다. 악… 줄을 헷갈린 거라고 믿고 싶어지던 찰나, 그냥 이륙이 늦어진다는 문구가 따라 나왔다. 원래 이륙 시간보다 한 시간도 일찍 도착했는데 45분이 더 늦어진다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결항이 아님에 감사했다. 
  공항이 작아서 구경할 것도 별로 없었다. 금방 둘러보고 어딘가 앉기 위해 스타벅스를 찾았다. 겨울 한정 ‘에그노그 라떼’를 마셔보고 싶었는데 안 팔았다. 다시 나왔다. 내가 에그노그 라떼를 주문해서 나오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다시 방황하면서 이번에는 맥주의 강한 유혹을 느꼈지만 참아냈다. 짐 들고 화장실 가기가 너무 싫어서였다. 하지만 목은 마른지라 스무디와 생과일주스를 파는 가게에서 웬 Early Rise라는 이름의 자몽이 들어간다는 주스를 마셨다. 시고 달았다. 자몽이 들어갔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이까지 썼는데 동거녀 J가 돌아왔다. 이 집 사람들 중 가장 붙임성이 좋다. 나와 프랑스어로 대화하려다 영어로 바꾸곤 하는 인물이다. 방금 대화하다 알았는데 콩고 출신이고 부모님이 스와힐리어를 쓰신단다. 내가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란 눈치다.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면 누구나 그런 반응을 보인다. 물론 프랑스어를 배웠다고 말해도 놀라지만 스와힐리어의 스타성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건지 아니면 그 주체가 나라는 게 놀라운 건지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 여기서 ‘나’란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온 동양인이다. 아 그나저나 이런 복잡한 문제를 찬찬히 생각해보기에는 너무 졸리다. 오늘의 일은 내일로 미루고 잠을 청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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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12-2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 같아요~~ 하나쯤 더 배워야하는데, 맘같지 않네요.

明卵 2010-12-20 19:48   좋아요 0 | URL
배우기 시작하는 것도 그렇지만 계속 닦아나가는 것도 중요한데, 정말 맘 같지 않아요. 흑흑...

쭈비 2010-12-22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니 글에 '생경하다'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자꾸 쉐이키 생각 나
 

Krapp's Last Tape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Duchess Theatre, London. 2010년 11월 3일.    

  사무엘 베케트 작품이라는 것만 보고 영문학도의 혼을 불태우며 보러 갔었는데 이제야 페이퍼를 쓴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 끼적여놓은 것을 간단히 이었다. 일인극인데 덤블도어, 마이클 갬본이 크라프로 분했다.  

  *

  늙는다는 것.  

  *

  크라프는 이제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줍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나이가 들었다. 늙었다. 노인 특유의 고집인 양 책상 위에 뭔가 반듯하게 올려놓는 데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그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크라프가 바나나를 하나 까 먹는 데 몇 분이나 소요되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 그가 먹는 바나나는 삼십 년쯤 전에 먹었던 바나나와는 다른 것이 아닐까? 세 개째 바나나를 먹었던 서른 아홉 생일날 그는 바나나 하나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을까? 바나나를 가지고 장난을 쳤을까? 노인이 된 그의 시간은 과거를 질투하고 비웃고, 바나나 껍질을 주워서 다시 던져버리거나 테이프 통을 정리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과거의 그에게 시간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바나나를 그토록 조심스레 털어볼 생각인들 할 수 있었을까?  지금 무대 위 크라프의 시간은 바나나와 테이프로 채워져 있다. 반면 테이프 속 크라프의 시간은 구체적인 사건과 회상으로 가득하다. 곱씹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시간과 곱씹는 시간이 한 무대 위에 펼쳐진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테이프. 그는 테이프를 돌려 듣는 그 시간 속에 살아있을 뿐, 테이프에 녹음된 순간은 어떤 의미에서 죽어 있는 것이다. 그가 보낸 시간, 그의 사랑이 담긴 테이프는 이제 케케묵은 먼지에 뒤덮여 있다. 이렇게 종종 꺼내어 틀 때면 늘 똑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듣고서 다시 돌려 보아도, 언제나 같은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내용은 물론이고 모양새도 그러하다. 한 쪽은 오른쪽으로 한 쪽은 왼쪽으로- 몇 번이고 다시 듣더라도 테이프 레코더가 돌아가는 모양새는 이처럼 똑같을 것이다. 크라프는 테이프를, 다시 말해 죽은 시간을 소유하고 있을 뿐 ‘바로 그 시간’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은 그 순간의 마지막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처음 이 극의 제목을 접했을 때 이제 나이를 먹은 크라프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테이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극 속에 나온 테이프는 크라프가 30년 전에 녹음한 테이프뿐이다.  

  지금까지 내 삶을 녹음해서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는 것에 집착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좌절하긴 했어도. 녹음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로지 청각적인 기록만이 있음을 뜻한다. 이는 시각적인 기록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내 목소리— 크라프가 몸서리치는 자신의 젊을 적 목소리처럼 지금 나의 목소리도 언젠가 내게 아주 생경한 것이 될 것이다. 녹음하여 기록한다는 것은 그때의 말투, 음색, 어떻게 숨을 쉬고 어떤 분위기를 내는지 세세한 부분까지도 가지려고 하는 욕심의 반증이다. 하지만 크라프의 모습은 어떤가? 테이프를 부여잡고 우는 크라프. 에피와의 소중했던 순간, 그 순간의 떨림이 그 속에 다 들어있건만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런 불길은 남아있지 않다. 그녀와 보낸 가슴 떨리던 순간, 그에 대한 묘사는 자신이 겪은 일임에도 다른 사람의 일과 같이 들렸을 것이다. 지금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흘러가버린 시간과 그 속의 자신일 것이다.  

  크라프는 과거에 대해 많이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연극은 ‘I wouldn’t want them back’이라는 대사로 끝이 난다. 지금 이 멘트를 녹음한 것의 시점이 언제인가가 모호해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모호함 또한 의도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화가 나도록 샘이 나지만,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바나나를 그렇게 꼼꼼히 지켜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그 시절과는 또 다른 ‘그의 삶,’ 박제되지 않은 삶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삶은 지금 뿐인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참 오랜만이다. 이곳에 다시 뭔가 쓰게 된다면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었기에 늘 미루기만 했는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좋은 모습’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리도 미루다가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낙서로 돌아왔다. 하도 간만이라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고향이 그대로 있어 주었다는 사실 만으로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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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12-15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반가와요. 많이 성숙되어 보입니다.

明卵 2010-12-16 09:07   좋아요 0 | URL
헤헤, 다시 찾아왔습니다, 마립간님! ^^

BRINY 2010-12-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잘 지내시고 계신 거 같네요. 사진 좋아요~

明卵 2010-12-16 09:08   좋아요 0 | URL
네... 너무 오랜만에 페이퍼 써서 부끄럽지만 꼭 돌아오고 싶었어요 언제나. 런던에 교환학생 와 있습니다 ^^~

쭈비 2010-12-16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연극 봤던 때가 다시 문득 떠오르고 좋다:) 나도 기록해둘껄 엉엉 ㅜㅜ

明卵 2010-12-16 09:09   좋아요 0 | URL
이거 다시 보면서 나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_'... 하면서 앞으로 기록하리라는 욕심을 다졌어@.@
 

  제목이 무슨 우리 아이가 첫 발걸음을 뗐다는 식으로 뭔가 호들갑스럽다.

  7월 2일은 학점이 나오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날(?) 새벽 4시에 잠을 청했다. 10시 전에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일찍 일어나버리면 학점이 뜨는 10시까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나는 전혀 나답지 않게 7시, 8시, 9시, 9시 24분, 9시 33분에 잠을 깨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매번 눈뜰 때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9시 24분에 이어 33분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도저히 더는 잘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적이 전부 B로 뜨는 악몽을 꾸면서 어떻게 더 자겠느냔 말이다. 아침을 먹고 어영부영 하다보면 10시가 되겠거니,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반찬은 김치찌개였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집에서 만든' 김치찌개. 전날 밤 몇 숟가락 국물을 떠 먹고는 좋다고 아침에 먹을 일을 그리던 그 김치찌개였다. 여전히 맛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숟가락을 들고 김치찌개를 코로 넣는지 입으로 넣는지, 김치를 씹어 넘기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을 겨우 다 먹었는데, 아니 10시까지 10분이나 남은 게 아닌가. 난 아침밥을 그냥 마셨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컴퓨터를 켜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일단 만화책을 읽자고 생각하며 전날 빌린 <파파 톨드 미>를 잡고 있었다. 몇 장 넘기고 고개를 들면 겨우 1분이 지나 있는 식으로 5분을 보내다가, 아, 이제 시계를 보지 말고 이 만화책을 다 읽고 확인을 하러 가자, 릴랙스 릴랙스, 라고 생각하며 만화책에 집중(하는 척) 했다.

  그러나 곧 어디선가 익숙한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랬다. 10시에 일어나려고 10시에 알람을 맞춰둔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릴랙스는 무슨. 읽던 만화책을 집어던지고 얼른 컴퓨터 앞에 달려가 앉았다. 그리고 접속 폭주로 인한 서버 마비를 20분의 클릭질 끝에 극복해낸 나는 보고야 말았다, 나의 학점을 !



  헐.

  헛것을 본 줄 알았다. (사실 10시 20분 경에 봤을 때는 아직 문학과대중예술 점수는 안 떠 있었다.) 오류가 난 게 아닐까? 친구들과 네이트온을 하는 손이 떨렸다. "야... 나 아직 안 뜬 거 하나 빼고 다 A+ 야..."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서 나는 또 말할 수 있었다. "야... 나 올 A+야... 평점 4.5야..."

  나는 학점을 잘 받고 싶었다. 놀기는 많이 놀았지만, 그래도 아주 이기적이게 학점도 잘 받고 싶었다. 그런데 학기 초에 이런 말을 듣고 나는 좌절한 적이 있었다. '공부와 학점은 비례하지 않는데, 술과 학점은 반비례한다'는 말. 아니 그러면 인주련(학교 인근 주민을 일컫는 말. 이들은 학기 초에는 선배들의 술자리에 불려 나가고, 후에는 스스로 술자리를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인 나는 학점 잘 받을 생각은 버려야 한단 말인가? 크나큰 절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빡세게 놀기로 했다. 에잇, 어차피 못 받을 학점 !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기분이 정말 좋으면서도 얼떨떨하다. 모두가 피하라고 했던 문학으로 시간표를 채운 나를 보며 많은 이들은 혀를 찼지만 나의 선택은 옳았다. 문학 수업은 읽으라는 책만 잘 읽고(비록 교양 한 수업에서 <감정교육>, <목로주점>, <거꾸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스완네 집 쪽으로->, <인간의 조건>, <전락>을 다 읽고 독후감 쓰게 만들지라도), 써 내라는 것만 열심히 써내면(비록 그것이 아도르노가 말하는 초월성의 관점에서 시를 분석하거나 그림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일지라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거였나보다. 아니면 내가 08학번 치고 서술형 문제를 너무 뻔뻔하게 써 내서 교수님이 어이가 없고 귀여운 나머지 A+를 줬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내 시험지를 돌려 받아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대부분 시간의 압박에 거의 뇌를 거치지 않고 손으로만 써내려가는 기분으로 썼기 때문에 내가 어떤 말을 지껄여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참 궁금하다. 그리고 교수님들께 여쭤보고 싶다. 내 답안과 대 과제가 어떤 점에서 A+를 받을 만했는지 말이다. 불만인 건 전혀 아니고 소박한 피드백을 바라는 것이다.

  흠... 긴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내 자랑이다. 난 대학 가서 탕아처럼 논 기억밖에 없어서 서재질을 못할 정도로(혹시나 가족 중 누군가가 보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놀고 4.5를 받았다! ...는 거...히히히^0^..ㅋㅋㅋ 2학기가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저 즐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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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8-07-0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하셔도 되지요. 역시 명란님입니다.

울보 2008-07-0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축하해요 명란님 역시

2009-01-0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달 쯤 전이었던가, '라 비 앙 로즈'를 매우 감명깊게 보고 나오면서 그 기분에 귀를 뚫었다. 뚫을 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안 아팠는데 이게 귀뚫이귀고리에서 링귀고리로 바꾸고 나서 뭔가 잘못되기 시작됐다. 아니, 사실 링귀고리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감다가 잡아당긴 나의 문제였겠지만, 아무튼 불행의 시작은 그때 즈음이었다. 그때부터 귀가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다가 최근에는 며칠째 약을 써도 안 듣도록 부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부은 부위가 귀 뚫은 곳 주위에서 귀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귀에 살이 찌나,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애당초 몸에 살이 빠지고 있는데 귀에는 살이 찌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다.

  그래서 오늘 밤, 방금, 결단을 내렸다. 귀고리를 빼기로!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귀 주위에 덕지덕지 굳어있는 진물을 씻어내고, 귀고리를 뺐다. 빼는 과정의 이야기는 너무 처절하고 가여워서 도저히 적어줄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적기로 한다. 단 간략하게. 처음에 계속 빼려고 시도를 했는데 안 빠졌다. 손톱이 길어서 고리를 잡은 부분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귀가 부어서 접합부분이 귀에 파묻힌 탓도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해준 알록달록한 매니큐어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손톱을 깎았다. 그리고 수 차례 시도 끝에 오른쪽 귀고리를 빼는 데 성공, 그 다음으로 왼쪽 귀고리도 가까스로 빼 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적어놓으면 그렇게 처절하고 가엽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겁많은 내가 내지르는 욕설 및 귀고리를 향한 회유, 의미를 알 수 없는 구호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실로 안쓰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음을 조금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귀고리를 뺀 나는 이제 아마도 평생 귀는 못 뚫지 싶다. 귀고리를 하면 1.5배 예뻐보인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리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약물 복용까지 하면서도 지키고 싶었건만. 게다가 귀고리 쇼핑이 너무 하고 싶었건만! 하필이면 요즘 금값이 올라서 내가 원하는 쇼핑을 해 보지도 못했는데, 꿈에 근접해보지도 못한 채 귀고리를 뺐다. 하긴 쇼핑을 했었다면 더 아까웠겠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왜 나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어서 싸구려 귀고리를 막 사대지 못했단 말인가. 그거라도 해봤으면 한이라도 적을 것을... 그나저나 귀고리가 빠지니 귀가 정말 허전해 보인다. 1.5배의 효과가 이렇게 컸나- 내일 약속 있는데 조금 슬프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어서 앞머리라도 자르러 가야겠다.
 

추신. 이제부터 나는 귀 뚫은 여자들을 보면 거수경례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로 했다.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이분들의 노고를 따라잡으려면 나는 15cm 하이힐에 도전하는 것말고는 다른 수가 없겠다. 그러면 귀도 뚫고 15cm 하이힐도 신은 여자는? 이건 이미 인간을 초월한 듯 싶다... (근데 15cm 하이힐이 있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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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01-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독해주면 가라앉을텐데.
저도 처음에 귀뚫었을 때는 귀에 염증생겨서 소독하고 그랬더니 다시 괜찮아졌어요.
한 번 고생하셔서 귀걸이는 꼴보기도 싫으시겠지만 ㅎㅎ

10센치까지는 본 것 같은데 15센치는 아직 못 봤어요 ㅎ

明卵 2008-01-29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안 심할 땐 괜찮아졌는데-
이번엔 건 너무 오래가면서 귀 전체가 다 부어가지고요ㅜ_ㅜ
무서워서 빼버렸네요.
15cm 없으면 더 좋아요. 그럼 제가 그들의 노고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 되겠죠 뭐.

울보 2008-01-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명란님 귀뚫고 그래도 한달이상은 그냥 뚫은 귀걸이로 안이쁘더라도 견디셔야 하는데
저는 석달을 가만 두라고 해서 정말 말 잘듣고 석달 그 귀걸이로 버티어서 지금은 몇달을 안하다가 해도 막히지 않고 그냥 그런데,,

明卵 2008-01-29 10:06   좋아요 0 | URL
끄헉... 왜 제가 뚫은 곳의 직원은 5일 동안 하고 있으라고 했을까요... OTL
그리고 제 동생이 귀뚫이귀걸이가 귀에 박히는 바람에 쨌거든요-
무서워서 얼른 그걸 빼고 링으로 바꾸고 싶었어요 ㅠ_ㅠ
귀뚫이귀고리도 예뻤는데... 흑.

그럼 용기를 내서 이 상처가 다 아물면 다시 뚫어볼까요ㅎㅅㅎ?
저도 이번엔 석달 그대로 두고-
역시 1.5배를 포기할 수가 없다구요. 하하하

털짱 2008-02-1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진짜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신선한 대학 새내기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겠군요.

지나고나니 좋았다지만, 스무살은 왜 그리 힘들고 고단한 순간들로 점철되었는지....

명란님의 대학생활에 열정과 낭만이 충만되길 기원합니다. 화이팅! ^0^

털짱 2008-05-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를 뚫지 않은 일인으로서 명란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그냥 살자!!!"